[미디어스=김혜인 기자] KBS가 주도하는 수신료 산정 논의에 공영방송인 EBS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EBS 몫의 수신료 배분율 3%로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4일 EBS가 후원하고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EBS의 시대적 역할 재탐색 및 재원제도 개선방안 모색>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1981년 이후 40년째 동결된 월 2,500원의 수신료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많게는 9배 차이가 난다. 일본 NHK의 경우 교육문화 채널인 ETV에 약 6,951억 원을 투입하는데 이는 KBS와 EBS의 수신료를 합한 금액과 비슷하다.

24일 한국언론학회 주최, EBS 후원으로 열린 <EBS의 시대적 역할 재탐색 및 재원제도 개선방안 모색> 세미나가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박주연 한국외대 교수, 조항제 부산대 교수,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사진=한국언론학회)

수신료 인상안은 앞서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제안됐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김 소장은 여러 차례 무산된 수신료 현실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 수신료 제도를 둘러싼 문제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KBS가 일차적으로 수신료를 산정하는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수신료의 일차적인 결정주체가 이해당사자인 KBS이사회라는 점은 금액 산정의 설득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신료는 ‘KBS의 텔레비전방송을 수신하는 자’가 아닌 ‘텔레비전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수상기를 소지한 자’가 부과대상”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수신료의 사용 주체는 KBS만이 아닌 공영방송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소장은 “해당 판결은 KBS만이 아닌 공영방송이 공동으로 수신료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라며 “이후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에도 KBS가 수신료의 결정주체라는 것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수신료 조정안을 검토한 방송통신위원회 6차 회의에서 자문단 중 일부는 ‘수신료를 국민들이 내는 것은 KBS만 주는 것이 아니다. KBS는 대표적으로 신탁을 받아 EBS와 KBS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용이다. 현재 KBS가 EBS에게 뭔가 찔끔 나누어 준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EBS는 수신료 산정 절차에서 배제돼 있다. 수신료 산정 과정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지만 EBS의 의견이 절차에 반영됐는지 검증할 방법은 없다. 또한 EBS는 방송법 시행령 48조에 따라 3%의 수신료 배분을 받고 있지만, 3%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김 소장은 지적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의 발제문에 실린 자료

김 소장은 EBS의 3% 수신료 배분율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짚었다. 월 70원으로 연간 약 180~190억 원대의 수신료 규모로는 교육방송의 책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2019년 기준으로 수신료 배분율은 KBS 93.2%, EBS 2.8%, 한전 위탁수수료는 6.8%다. 김 소장은 “한전 수수료율이 EBS 배분률보다 2배가량 높은 현실도 납득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현 제도 속에서 수신료 인상이 반복적으로 좌절돼왔으니 변화를 택해야 한다”며 수신료 결정절차의 개선방안으로 수신료 위원회(가칭)의 설치를 제안했다. 이해당사자인 KBS 이사회가 아닌,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수신료를 산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수신료 회계분리를 통해 공영방송에서 수신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신료 회계분리는 국민이 납부하는 수신료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박주연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공영방송 수신료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데에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시대적 역할이 불명확하게 제시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영방송의 불명확성이 방송 재원의 현실화와 연결되며 수신료 현실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고, 수신료 현실화 과정이 정치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재원을 산정하는 객관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못해서”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독일의 수신료 산정위원회 ‘KEF’ 모델을 예로 들며 ‘수신료 산정위원회’ 설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독일에는 수신료가 ‘방송부담금’으로 개편돼 TV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독일인이 월 17.5유로(2만3천 원)를 내고 있다. 최근 방송부담금액을 인상하는 안이 KEF에 올라왔는데 박 교수는 이 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KEF가 객관적, 중립적인 기준으로 금액을 산정하기에 이를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수신료 회계분리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본다”며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면 오히려 수신료 현실화 논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EBS의 수신료 배분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며 "EBS도 공영방송으로서 교육이라는 특정 분야에 제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신료 인상의 이유를 찾아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디지털 시대에 교육이라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간 재원과 공적 재원이 구분돼야 한다"며 "현재는 공적 재원과 상업 재원이 3:7의 비율인데 공적재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신료 인상안을 논의할 때 3500원, 4000원 등 액수를 먼저 산정하는 게 아닌 1년에 필요한 공적재원이 얼마이고 이를 가구당 나눠서 낼 것인지, 전 국민이 낼 것인지 순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김명중 EBS 사장은 인사말에서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교육공영방송인 EBS는 방송부터 온라인 플랫폼까지 모든 자원을 활용해 학교 현장을 지원해왔다”며 “교육공영방송다운 재원이 뒷받침될 때 공영방송의 가치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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