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 선수였고, 나를 포함한 많은 해태 팬들에겐 마지막 주장으로 기억되던 이호성 선수가 4모녀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언제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또 어떻게 그토록 압박적인 스크롤을 내려읽었는지 조차 막막한, 정말이지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포털의 힘이다. 포털은 미디어인가? 수십 차례의 토론회, 세미나 그리고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다'는 대답만으로는 2% 설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포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규정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와 사건들을 몰아쳐가는 포털의 힘은 날로 파괴력을 더하고 있다. 포털이 유저들에게 이호성에 대한 분노를 클릭하도록 프로그래밍한 이상, 무죄 추정의 원칙, 피의자 인권의 요구는 고상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사건의 정체와 본질을 규명하는 노력은 허망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살해 사건에 한 마디를 보태야겠다고 생각한 건 포털에 달려있는 댓글들을 보면서다. 그 댓글들은 총선을 앞두고 부쩍 목소리를 높혀 '좌파 척결'을 외치고 있는 이명박 정권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그토록 저주했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섬뜩하고 격렬했다.

평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은 민주적 삶의 원리를 존중하며 댓글이야말로 소통의 다원성을 실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왔지만, 이호성 사건의 전개 양상은 이전의 사건 사고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이호성 사건에 접속하여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집단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관련 댓글에 물반 고기반이다.

2008년 3월, 호시탐탐 ‘I will Back!'을 외치던 그들의 공습이 시작됐다. 지역 차별과 성차별주의로 똘똘 뭉친 패거리 집단, 상상을 초월하는 유사 파시스트. 그들은 우익 청년이다.

▲ 3월 10일 네이버 뉴스 댓글 캡쳐

3월 10일 기준으로, 네이버 뉴스에서 공감을 많이 얻은 순으로 댓글을 정리한 화면이다. 밑줄을 친 4개의 댓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역을 차별하고 공격하는 내용들이다.

사진의 댓글들을 봐도 한 마디로 난동 짓거리, 폭력의 향연이다. 너무 노골적이고 게다가 자극적이어서 공격에 대응하는 마땅한 대꾸조차 헛하게 한다. 이제는 거의 공론의 장에서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지역 차별의 숙주가 오랜 잠복의 시간을 인내하더니 이호성 사건을 계기로 한층 강력해진 모습으로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우익은 결코 좌익에 대비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우익은 변화해가는 보편적 가치에 저항하며 반동적 가치를 맹종하는 세력이다. 우익은 바로 평등을 거스르는 차별을 당연시 하고, 평화에 저항하는 전쟁을 택하여 결국 우익이 아닌 이들의 평온한 일상을 억압하는 무리들이다. 상식에 반하는 자들이다.

물론, 이호성 사건 이전에도 열혈 네티즌들 사이에서 지역은 뜨거운 이슈였다. 지하철 사고 등 사건이 많이 일어나 암울한 분위기의 대구를 빗댄 '고담 대구', 영화 <친구>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갱스터가 많은 부산을 칭하는 '갱즈오브 부산', 엽기적 살인 사건이 잦은 '마계 인천', 데모를 자주 하는 좀비들의 도시란 뜻의 '라쿤 광주', 저소득 빈민층이 많다 하여 '뉴올리언스 수원' 등 지역을 차별로 가름하는 다소 악질적인 칭호들이 인터넷을 달구긴 하였다.

그러나 이번 이호성 사건을 둘러싼 일부 네티즌, 우익 청년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사회적 범죄이다. 그들은 '전라디언'(전라도 사람)이라는 악질적 비하의 약칭을 사용하며 이번 사건을 전라도 전체를 공격하는 패거리 문화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라도 차별의 근원이 '차현 이남과 금강 아래의 사람들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 했다던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 때문이건 아니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상징적 정치인을 제거하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술수 때문이건 상관없이 특정 지역을 차별하는 것은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아닌 우익들이 좋아하는 경제적, 실용적 맥락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익의 가치인 국가적, 민족적으로 봤을 때도 엄청난 손해이다. 한 마디로 몰상식이다.

지역 차별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평등함을 거부하는 우익을 위한 나라의 상식일 뿐이다. 일부 네티즌, 청년 우익은 지금 이호성 사건을 불평등과 폭력의 논리로 해석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반합리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철지난 유행가가 다시 틀어지겠냐고, 철없는 객기를 압도하는 이성의 점잖음을 믿으시겠다고,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전라디언'이라는 악질적 표현으로 둔갑시켜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는 저들의 감각적 진화를 보라. 포털의 생태계는 말초적으로 더 말초적으로 진격해갔다. 전라도를 불신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감정적인 억제가 불가능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공격하는 아주 말초적인 무식함이 지금 포털을 지배하고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뤄지지 못한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역사의 비극이었다면, 조갑제의 우익 네티즌 10만 양병설은 희극이었나. 때만 되면 잊지 않고 좌파 척결을 부르짖는 이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우익 청년들이 인터넷을 점령하는 귀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화하는 포털과 미디어 환경의 근본적 변화 속에서 여론은 어떻게 생산되고 여론몰이는 어떠한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기가 막힐 뿐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우익을 위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을 휴학하고 몸을 더듬어보니 라이타 한 개밖에 없더라는 싸구려 열정에 여전히 감격하는 청년 백수. 을용타에 열광하는 청년 백수들이여,라이타(right-打)하라! 오른쪽을 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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