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자장면, 빵 값이 오른다고 야단이다. 한국은행의 물가동향에 따르면 밀 값이 지난 1월 1년 전에 비해 140.3%나 올랐다. 세계곡물시장은 어제 오늘 요동친 게 아니다. 최소한 지난 3년 이상 경고음을 올려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농지규제 완화를 외치며 거꾸로 가고 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아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쌀 자급률이 95.5%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국제시장의 수급동향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밀은 생산기반이 붕괴되어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자급률이 0.2%에 불과하여 해마다 400만톤이나 수입한다. 쌀 생산량이 연간 500톤이라는 점과 견줘 보면 밀 수입량이 얼마나 엄청난지 짐작된다. 뛰는 값은 그대로 가계부에 반영된다.

▲ 경향신문 3월 14일자
1960년대만 해도 겨울 밀밭이 흰 눈 위로 푸르름을 자랑했다. 그런데 값싼 수입 밀에 밀려 밀밭이 사라져 버렸다. 그 즈음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가을 곡식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덜 여물어 먹을 것이 없던 봄철을 말한다. 그래서 정부가 식량난을 덜기 위해 분식을 장려했다. 미국산 밀이 싸니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도록 행정력까지 동원해 독려했던 것이다. 설렁탕에도 국수를 섞어 팔도록 할 만큼 말이다.

미국산 밀이 밀물처럼 밀려오자 밀농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70년에만 해도 재배면적이 15만9000ha로 겨우 명맥은 유지했다. 그러나 밀농사는 헛농사라 그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1991년 들어 뜻 있는 이들이 우리밀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재배면적이 1995년에는 1만3천511ha로 늘어났다. 그러나 값이 수입산보다 비싼 탓에 소비가 일지 않아 손을 들고 말았다. 아직도 밀농사를 더러 짓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서는 광활한 농지에 비행기로 씨를 뿌리고 비행기로 농약도 비료도 준다. 수확-탈곡-운송도 기계화된 일관작업에 의해 이뤄진다. 노동력도 주로 남미 출신 밀입국자를 쓰니 인건비도 싸다. 생산비가 저렴한데 한국의 수입관세가 2%로 거의 무관세 수준이다. 일본은 200%, 중국은 180%다. 이 이유로 우리밀 살리기가 실패한 것이다. 자국농업을 수출국에 무방비 상태로 내모니 우리밀이 살아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무정책과는 달리 증산책을 쓰고 있다. 밀 수매는 민간기업이 맡지만 전체 생산량의 94%가 정부보조금을 받는다. 그 재원은 수입업체가 밀을 수입해서 얻는 이익의 일부를 징수해서 조달한다.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논을 밭으로 바꿔 밀을 생산하면 전작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외에도 수입할당제를 통해 사실상 수입물량을 조절한다. 그 결과 밀생산량이 85만톤으로서 자급률도 13% 수준으로 늘어났다.

국산밀이 수입밀보다 비싸지만 건강 문제도 따질 필요가 있다. 미국산 밀은 재배과정에 비료와 농약을 많이 부린다. 수출용은 수확 이후에도 방부제를 살포한다. 장기간의 수송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패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국에 오자면 미포장 상태에서 육상은 철도로, 해상은 벌크선으로 운송한다. 미국의 동부나 남부서 선적하면 파나마 운하를 거쳐 30일 가량 운항한다. 서부에서 출발하면 항해일수가 15일 정도 걸린다. 항해과정에 열대지역을 지난다.

세계식량시장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수년 새 곡물 가격의 앙등은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현상에서 비롯됐다. 곡물 수출국들이 잇달아 수출제한·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식량자급률이 25%선에 불과하다. 수입해서 먹는 게 싸다는 비교우위론자들이 역대정권에서 득세해 농업을 경시한 탓이다. 이명박 정부는 물가단속과 같은 미봉책에 매달지 말고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본 대책을 강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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