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책을 좋아하고 텍스트에 대한 분석력과 공감력이 뛰어난 Q가 있었다. Q는 학교 후배였다. 좋은 글을 보면 흥분해서 책장이 닳을 정도로 읽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연필로 밑줄 긋고, 위에 다시 파란 펜으로 밑줄을 긋고, 페이지마다 스티커로 표시를 해두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어 주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흥이 오르면 Q는 아끼고 아끼는 문장 하나를 시를 읊듯 읊조렸다. 책을, 책의 문장을 제 몸과 같이 생각하고 육화시켰다. Q는 자주 책의 문장을 인용해서 사회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했다. 생활이고, 습관이 되었다. 그만큼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다독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며 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가 많았다. Q도 그 자리에 있었다. Q는 친한 사이끼리만 있어도 책의 문장을 인용해 말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책 속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비평가와 문장을 외는 Q가 점점 이상해 보였다. Q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항상 자신의 생각을 남의 문장을 빌려야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과 말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간극은 크고 전개는 비약적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간극과 비약, 행간의 의미를 해석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피곤했다. 결국 Q에게 말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네 이야기를 해. 네 이야기를. Q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거렸다. 책의 문장을 인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을 빌리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속에 자신만 쏙 빠져 있었다. 알맹이 없고,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정성을 들여 이야기했다. Q가 이런 대화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다. 시간이 지나도 가난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언니는 악바리처럼 공부하고 연애해 지긋지긋한 집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났다. 남아있는 Q가 부모님을 도와 두 동생을 돌보고, 돈을 벌며 학교에 다녔다. ‘도와’라고 말했지만, 전적으로 Q가 전기료부터 식비까지 생활비를 부담했다. 게다가 동생이 사고 친 일까지 수습해야 했다. Q가 견뎌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Q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벗어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주위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힘들다 못해 분노하며 공격성을 드러내는 Q에게 말했다. 너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다 잘 살 거야. 그 집에서 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 봐. 너를 위해 살아봐. 너를 사랑하며 살아봐.

Q는 집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 생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만만하지 않다. Q에게는 더 어려운 숙제였다. Q는 지금 다시 인내와 고행의 길을 수행하고 있다. 또 한없이 희생하며 살고 있고, 살게 될 것이다. Q는 베풀고, 희생하는 것을 잘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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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타성은 희생에서 비롯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타성은 자신에 대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자기에 대해, 자기 것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나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돌볼 수 없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100%의 순도로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 사랑을 모르면서 하는 희생은 증오만 키우고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나는 나를 2인칭이나, 3인칭으로 부를 때가 있다. 너, 혹은 은희라고 부르며 생각하고, 나에게 말을 걸 때가 있다. 주로 힘든 일을 직면했을 때이다. 그때마다 은희야, 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낌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잘하고 있어. 김은희 힘내. 괜찮다는 말도 많이 해주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말해 준다.

물론 매번 완벽하게 긍정적으로 에너지가 전환되지는 않는다. 또 마땅치 않은 내가 사랑스러워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말해도.

나를 사랑하는 것,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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