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등록금 1천만원 시대, 매년 물가 상승률의 몇 배가 오르는 등록금으로 인해 대학가와 학부모가 함께 몸살을 앓고 있다. 등록금의 결정이 대학의 자율적 권한으로 맡겨진 상황에서 뚜렷한 사회적 해법을 가지지 못한 채 입학 시즌의 대학생 등록금 싸움은 연례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기사 중 눈길을 잡는 대목이 있었다. 진보신당에서 내어놓은 '소득계층별 등록금 고통일수' 관련 보도였는데, 내용은 온 가족이 일절 소비를 하지 않고 전체 소득을 모은다고 가정하여 대학생 1인의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드는 기간 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 경향신문 3월 14일자
대학생 한 명의 일년 등록금이 1천만원, 적어도 7~8백만원이고 의대의 경우 1천4백만원을 넘는 오늘, 소득 하위 10% 가구의 경우 대학생 1명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237일이 소요되어 8월 26일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내용, 1년의 3분의 2를 보내야 등록금 마련이 가능하다는 얘기, 그저 눈에 띄는 기사로 지나갈 수 없는, 제목만큼이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소득 상위 10%의 경우 그 기간에 15일에 불과하여 하위계층의 등록금 고통일수는 16배나 더 길다는 내용은 차라리 사족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매년 대학이 자율적으로 등록금 인상율을 정해 가고 있으나, 여전히 그 결정에 관한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학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대학 재단의 지원이나 재정 전입은 극히 미미한 경우도 많고, 대학의 재정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한 점 등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대학들이 매년 시중 물가의 몇 배에 이르는 등록금 인상 결정을 해가고 있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와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기존의 변변찮은 장학제도뿐만 아니라 정책에 의한 학자금 지원제도 역시 극히 미흡한 현실 등은 등록금 갈등을 더 첨예하게 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즉, 등록금의 결정권을 가져간 대학이 자율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고 또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매년 큰 폭으로 등록금 인상을 해가고 있고, 정책적 사회적 지원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소득에 비해 과도한 등록금의 샌드위치 압박에 학생 학부모가 폭발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학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제안된 것만해도 등록금 후불제, 대출 융자제도의 확대, 소득 층위에 따른 감면제 등 다양한 내용들이 있다. 대학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학들 하버드나 예일 등에서도 연간 등록금이 3~4만불에 달하지만 풍부한 장학제도와 대출제도 이외에도 소득 계층에 따른 지원 즉 등록금 자체를 전액 혹은 반액 면제 등으로 차등해서 내도록 한다는 등의 얘기는 이미 귀에 익숙하다.

한 예를 보자. 지금 대학가에서는 지난 1월 7일부터 3월 28일까지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접수가 진행 중이다. 연간 약 60만명의 대학생이 이용하는 이 대출은 그나마 쓸만한 정책적 지원 사례 중의 하나인데, 10년 거치 10년 상환이 기본이고 그 금리는 연 7.65%에 이른다.

▲ 경향신문 3월 14일자 10면
이 대출은 일부 무이자와 2% 이자 감면도 있으나, 2년전 제도 시행때부터 연 6.95%의높은 금리로 시작했고 지금은 더 높아져 7.65%의 고금리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여타 정부의 시책자금 금리가 3-4%대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지나친 고금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1년에 몇백억원의 지원만 더하면 수십만명의 학생 학부모들에게 현재의 고금리 부담을 절반으로 덜어줄 수도 있을텐데,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고금리 대출 채무자의 멍에를 씌운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텐데 요지부동이다.

1년에 2천만원 벌기 어려운 서민 가정에서 대학생 한명 등록금 등 1천만원을 내고 나면 어떻게 살 수 있나? 어떻게든 살아가니까,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자금 융자 대출도 하고, 어디 장학금이라도 얻고 하니까 가난한 집의 아이들도 일부 대학에 가겠지. 그러면 그만인가? 왜 대학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이자가 다른 정부 시책 자금 대출 이자보다 2배나 높고 일반 주택 관련 대출보다 고금리여야 하며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유지되어야 할까? 왜 다양하고 현장에 적절한 정책적 방안들은 만들어지고 시행되지 못하는 것일까?

전체 정원이 200명에 불과했던 조선시대의 성균관 시절이나 또 대학생이라는 사실 만으로 대접받던, 워낙 소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60~70년대처럼, 대학교육은 소수의 사람들이 향유하던 것이라 '보편적 권리를 위한 특별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내포하지 않았던 과거의 정책적 관점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교 졸업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지도 오래다. 즉 이미 대학교육은 재정만 담보된다면 의무교육으로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보편 교육의 수준으로 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을 위한 지원의 정책적 관점은 여전히 소수가 대학에 진학하던 때에 머물러 있다.

"대학 교육은 소수를 위한 교육이 아니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거나 몸이 불편해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이 공유되어야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릴 수 있고, 학자금 융자의 금리를 절반으로 인하하고, 등록금 후불제를 제도화할 수 있다. 그래야 등록금 고통일수 237일의 서러움을 지울 수 있다.

대학 때 총기독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서울YMCA 청년회원 활동을 시작해 87년 간사를 거쳐 올해 7월 시민운동에서만 20년이 지났다. 소비자보호, 법률구조, 사법개혁, 방송개혁, 공정거래 등 시민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했다. 시민의 것을 빌려 쓰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피해당하는 시민 삶의 현장을 살피겠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민, 소비자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알려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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