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에펨코리아라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한국 전체 커뮤니티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규모에, 축구 및 축구 게임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의 게시물이 올라오는 종합 커뮤니티다. 에펨코리아는 디시 인사이드와 유사하게, 커뮤니티 안에 다양한 하위문화, 취미 분야에 관한 갤러리가 있는데, 독특한 점은 포텐 게시판에 있다.

‘포텐 터진 게시판’은 에펨코리아에 접속하면 곧장 대문으로 나오는 게시판이다. 포텐은 게시물 추천을 의미한다. 각 갤러리에서 일정 숫자 이상 포텐을 받은 게시물을 모아 놓은 별도의 게시판으로서 에펨코리아의 허브인 셈이다. 갤러리들 관심사에 해당하는 뉴스, 정보, 유머, 이슈가 올라오는데, 사회적 성격의 이슈가 생겼을 땐 해당 소식에 관한 게시물이 특히 많이 올라온다.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게시판 별로 베스트 게시물을 수집하고 해당 게시판에 종속된 메뉴에 모아놓는 것을 생각하면 개념부터 다르다. 다른 커뮤니티 베스트 게시판에선 게시물 소수가 몇 시간가량 등재됐다 내려간다. 포텐 게시판은 게시물이 1분 간격으로 올라오고 하루에 수백 개가 넘을 만큼 리젠이 폭발적이다. 어지간한 커뮤니티의 일상적 게시판만큼 회전율이 높고, 가장 많은 유저가 모여드는 게시판인 데다, 접근성이 높아 유저 유입 기능이 강하며, 조회 수는 몇만 번을 깔고 간다. 베스트 게시물을 선별하는 저장소의 성격을 넘어 거대한 일상적 게시판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화면 갈무리)

에펨코리아에선 ‘포텐’을 얻을 때마다 포인트를 준다. 이것이 커뮤니티 내에서 유사 화폐처럼 통용되어서, 사람들 주목을 얻는 것은 물론 포인트를 얻을 목적으로 포텐 게시물 등재를 노리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엔 재미있는 딜레마가 있다. 포텐 게시판은 화제성 높은 이슈를 통해 재생산되는데, 매일 같이 수백 개의 게시물을 생성할 만큼 새로운 이슈가 빈번하게 생기긴 힘들다.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포텐으로 보냈던 게시물을 다른 유저가 중복해서 올리거나, 때 늦은 소식을 최근 소식인 것처럼 재탕해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개의 근황”이라고 글을 썼는데, 한참 지난 소식이란 점이 댓글에서 지적당하고 “펨코 식 근황”이라고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식이다.

에펨코리아가 대부분의 커뮤니티와 구분되는 구조적 정체성은 이러한 이슈의 과잉 공급을 통한 이슈 소비의 일상화다.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이슈 특화 형 게시판, 끊임없이 유저들이 이슈를 공유하도록 독려하는 메커니즘. 에펨코리아에 접속하면 파노라마처럼 이슈가 펼쳐져 있고, 늘 새로운 이슈가 올라오고, 이슈에 이르지 못한 이슈가 쥐어 짜내진 채 부유한다. 하루의 소일거리를 위해 가십을 찾는 사람들, 화젯거리를 향해 말을 배설하고 싶은 사람들, 무언가를 알리고 홍보하고 싶은 사람들, 누군가를 비난하고 나쁜 소식을 퍼트리고 싶은 사람들… 에펨코리아 ‘포텐’ 게시판은 저들을 위한 거창한 놀이터, 이슈에 대한 밑 빠진 허기와 더부룩한 포만감이 공존하는 인터넷 세상의 디즈니 월드다.

에펨코리아는 미디어 분화를 따라 사회문화의 메인스트림이 서브컬처로 분해되는 시대에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의 관계를 한 편의 우화처럼 보여준다. 게임과 음악 산업, 축구와 인터넷 방송, 패션 등의 애호가들이 수평적으로 산재된 각 갤러리에 주둔하고, 메인스트림에 등재될 만한 규모와 성격의 이슈, 혹은 갤러리 유저들이 등재하고 싶어 하는 이슈들이 포텐 게시판으로 집결한다. 이 과정에서 갤러리 유저들은 포텐 게시판 유저들을 상대로 기싸움을 벌이곤 한다. 갤러리 유저들은 서브컬처 팬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탐닉하는 주제에 무신경한 포텐 게시판 유저들, ‘대중’들이 잣대를 휘두르며 참견한다고 불쾌해 한다. 각 갤러리에서 포텐 ‘머법관’(대법관처럼 남의 일을 판결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들을 풍자하는 게시물을 정기 행사처럼 포텐 게시판에 보내며 시위를 벌일 정도다. 혹은 어떠한 글은 포텐에 보냈을 때 시끄러워질 것이니 ‘포금’(포텐 금지 버튼)을 걸자는 전략적 판단도 한다. 메인스트림에 대한 서브컬처의 우세, 혹은 분화된 서브컬처들 자체가 메인스트림이 되어가는 사회상, 외부 집단을 향한 대항 심리로 자의식을 고취하고 집단적 의사 표현을 꾀하는 팬덤 문화의 단면이 엿보인다.

커뮤니티 내외부에서 실시간으로 논란이 터졌을 때 포텐 게시판은 들끓는다. 각 갤러리에 관련된 현안일 때 갤러리 유저들은 해당 소식과 그에 대한 입장을 포텐에 보내며 이슈 파이팅을 한다. 사안의 규모가 크고 성격이 민감한 경우, 심하게는 몇 날 며칠 혹은 그 이상 동안 포텐 게시판에선 논란의 당사자를 비난하는 글이 넘실거리기도 한다. 같은 논란이 계속해서 거론되다 보면 유사한 게시물이 중복되고 재탕되며 올라오고, 모든 종류의 사실관계와 의견 개진이 공유된 후에도 이슈의 공회전은 멈추지 않는다. 내용 있는 이야기는 사라진 채 몇 장의 사진과 단문을 통해 논란의 당사자를 ‘밈’으로 만들며 조롱하는 ‘이슈의 유희화’가 남는다. 또한 팬덤과 안티 팬덤의 대립에 따라 논란이 된 대상을 거꾸러뜨릴 때까지 화력을 퍼붓고 방어하는 공성전이 벌어진다.

이상의 이야기는 에펨코리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양상이 다를 뿐 그 본질은 인터넷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현상이며, 에펨코리아가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특별히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지금부터 제출할 결론의 생생한 예시나 표상으로서 길게 서술한 것뿐이다. 언제부턴가 사회 이슈는 난무하고 있으며 미디어의 곁가지가 증식해 이슈의 원천이 방대해졌다. 이슈는 의제로 승화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의 오락거리로 소비되고 이슈를 유통하는 시장 경제가 형성됐다. 발 빠르게 이슈를 채집해 선정적 논조로 말을 얹어 조회수를 버는 유튜브 ‘렉카’ 채널이 창궐하는 지경이다. 어떤 인물과 분야에 과몰입한 애착 감정을 걸며 지갑을 열어 후원하고 여론에 맞서 보위하는 팬덤 문화가 사회를 아우르며 보편화됐다. 논점과 가치판단을 규명하고 심층을 진단하는 공론은 사라졌다. 논쟁은 누군가를 타격하고 지켜내거나, 진영 논리를 표출하며 각자의 둥지에서 정신승리를 하는 것으로 단순해졌다. 사람들이 현재의 이슈를 버리고 다음 차례의 이슈로 몰려갈 때까지 아군을 결집해서 버티는 것이 논란에 대응하는 해법이 된 상태다.

공론장과 제도권 미디어에 해당하는 사회의 메인스트림이 약해지고, 뉴미디어 채널이 번성하며 팬덤 세력의 개별적 주둔지가 되었다. 이제 공적 규제가 작동하는 중심부에 초대받지 않아도 미디어 외곽 지대에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 가치 없는 이슈를 걸러 내고 사회적 가치를 해치는 활동에 규제를 가할 콘트롤타워가 사라져 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큰 물의를 빚어도 빨아먹을 ‘코인’을 제공하는 팬덤만 있다면 건재하다. 정파적 입장과 젠더 이슈 같은 커다란 진영논리의 전선이 사회에 산재된 작은 팬덤들의 국지적 전선과 교차하며 대립을 심화하고 개별 이슈가 독자적으로 해결될 출구를 한층 여민다.

이 이슈 초과잉 사회와 팬덤 사회의 결말은 무엇일까. 사회적 갈등은 조정되지 못한 채 영원히 갈등으로만 남고, 진영 논리의 자폐성이 더 짙은 세력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더 많은 신도를 거느린 종교 집단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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