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어린 학생 볼모로 삼는 파업 안돼”
9일 경남신문 4면 기사 제목입니다. 너무 익숙한 기사 제목입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대부분의 언론은 항상 ‘볼모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습니다. 그 목적은 시민들과 분리해 고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언론에 의해 불리하게 형성된 여론에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면 불가피하게 파업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일부 언론은 ‘파업 기간 중 대체 인력 투입이 금지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우리 노동조합의 파업권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우리의 파업권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개인과 노동조합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손배와 가압류’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난 6일 초등학교 돌봄전담사들의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은 지금까지 보도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이른바 ‘볼모론’을 찾아볼 수 없었죠. 일부 경제신문이 학부모들의 우려를 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파업의 배경과 쟁점, 돌봄노동자의 주장을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미디어스, 파업 들어간 돌봄전담사, 무엇이 문제일까)
정작 ‘볼모론’을 주장한 곳은 익숙한 ‘언론’이 아니라 ‘노동조합’이었습니다. 경남신문은 <“어린 학생 볼모로 삼는 파업 안돼”> 보도에서 경남교사노동조합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경남교사노동조합은 △지자체 운영 돌봄 관련 서비스 정책 제출 △양질의 돌봄 확대 서비스 정책 제시 △돌봄전담사의 파업에 교육청과 학교의 적극적인 대처 등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불평등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불평등’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주민발의법안 투표로 플로리다주에서는 ‘지금의 시간당 8.56달러인 최저임금을 2026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한겨레는 10월 7일 사설에서 김종인의 저서 <왜 경제민주화인가>를 인용하며 “현행 기업노조 체제에서는 경영자와 정규직 노조가 합세하여 정규직 권익만 보호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노동개혁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김종인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거론하며 ‘노조의 기득권화’, 즉 '큰 기업의 노조는 절대 권력이 되는 반면 취약한 기업에서는 노조 결성이 불발되거나 힘없는 노조에 그치는 노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바로 잡자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국내의 노동시장은 매우 이중적인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상위 20%는 고임금과 안정적인 고용을 누리는 반면(대부분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나머지 80%는 저임금과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놓여 있습니다. 상위 20%에 속하는 노동조합이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연대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과 무엇이 다를까요?
■ 경남신문 - “어린 학생 볼모로 삼는 파업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