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 망언 논란을 일으킨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과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이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어 논란이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이 장관은 6일 송구스럽다면서 “성인지 교육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에 압도돼 그런 표현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5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질의에서 이 장관은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대해 “국가에 굉장히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역으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838억 원이 학습비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이 장관은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국가를 위해 긍정적인 요소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냐는 질문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죄명을 명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박원순·오거돈 성폭력 피해자 및 지지단체들은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오거돈 성폭력 피해자는 5일 “오거돈 사건이 집단 학습 기회라니 그럼 나는 학습교재냐. 내가 어떻게 사는지 티끌만 한 관심이라도 있다면 저따위 말은 절대 못 한다”며 “주변에 피해주기 싫어서 악착같이 멀쩡한 척 하며 살고 있는데 여성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내 인생을 수단 취급할 수 있냐”고 따져물었다.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이 장관의 망언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이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오거돈과 고 박원순은 전 국민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가르쳐 준 스승이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해자는 국민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시켜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며 “이제까지 이정옥 장관은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여성가족부의 수장으로서 이러한 관점으로 기관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를 학습교재 따위로 취급하는 발언을 내뱉으면서도 한 점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 이가 여성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수장의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라며 여성가족부 장관직 사퇴를 촉구했다.

6일 서울시장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학습이 필요한 것은 여성가족부 장관”이라는 제목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입장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수사기관도 아닌 여성가족부 장관이라면, 자신의 역할을 먼저 학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성차별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 주무부처 장관의 철저한 무책임과 유체이탈은 지금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외면이며 앞으로 드러나고 말해져야 할 성폭력에 대한 방기”라고 말했다. 이어 “학습하지 않은 것은 정치권과 정부 여당”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해 여성에게 사과한다'는 언급에 공개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피해자는 이 대표에게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왔고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 물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정작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을 바꾸는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공동행동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 성폭력에 대해 정부 여당이 책임질 것과 피해자 질문에 답변할 것, 정치권 내 성폭력 사건 2차 가해를 당장 제지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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