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전당원투표를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 등을 공천하기로 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지만 그렇다고 팔짱끼고 지켜보기만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당장 야당의 비판이 거세다. 열린민주당 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여당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재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을 한 경우 공천하지 않기로 한 당헌 규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든 것인데도 손바닥 뒤집듯이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정치에서 약속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문제처럼 여겨진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상황 변화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이른바 ‘현실 정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라기보다는 ‘어떻게 했느냐’일 수 있다. 약속 파기라는 행위는 있을 수 있지만 명분이 전제라는 얘기다.

절차는 행위에 명분을 부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이라는 부담스러운 결정을 하면서 전당원투표의 형식을 거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야당이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고 드는 것은 여당 입장에선 뼈아픈 일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및 당헌 개정 여부를 결정하는 전당원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체 권리당원의 86% 찬성으로 공천을 결정했다(연합뉴스)

가령 투표율 논란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당규에 전당원투표의 정족수는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투표 결과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투표의 경우 애초에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진행한 일종의 여론조사라고 해명했다.

실제 당헌 개정은 중앙위원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 해명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전당원투표는 의결절차라는 것 외에도 지도부 방침에 대한 당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조직할 기회를 얻는 수단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순기능이 얼마나 제대로 발현됐느냐에 있다.

민주당은 투표 결과 당헌 개정과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찬성하는 비율이 86%로 압도적이라고 했다. 이러한 압도적 찬성의 동력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재보궐선거의 판이 커져 대선까지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이 분명해졌다는 점에서 주요 정당으로서 이 선거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둘째, 당헌 개정은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대표가 앞장서 추진했다는 점에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도 작용했을 것이다. 셋째,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사실상 찬성 투표 캠페인을 벌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면에서 ‘답정너’ 투표라는 비판도 있지만, 정말 문제는 이런 사유가 하나같이 정파적 이해득실에 관한 것일 뿐 정치 윤리나 원칙을 어떻게 현실 정치에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점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예로 들면 민주당이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리라는 것은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이에 걸맞은 행보를 해왔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당 대표가 기자의 질문에 화를 내거나 일부 인사들이 사건의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식의 의혹 제기에 나선 것과 같은 것들 뿐이다.

이낙연 대표가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한 것에 대해 국민과 피해 여성에게 거듭 사죄했음에도 피해자가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하는 것이냐”는 냉소적 반박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 윤리신고센터 등을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에 그나마도 ‘재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민주당은 투표에 참여한 당원들은 설득했을지 몰라도 다수 국민에 대한 설득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외의 대목에서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당원투표를 거쳐 지도부가 확정한 당헌개정안은 당헌의 이른바 ‘무공천’ 조항에 전당원투표를 통해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당원투표’는 앞서 살펴본 당규상의 의결절차는 아니라고 한다. 지도부가 결심하면 언제든 해당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항은 차라리 삭제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민주당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게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삭제할 경우의 파장을 우려한 때문일 텐데, 군색한 이유다.

개정 규정의 효력 자체도 의문스러운 대목이 있다. 가령, 중앙위에서 당헌 개정 절차를 완료하면, 개정된 당헌에 따라 전당원투표를 다시 실시해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한 총의를 한 번 더 물을 것인가? 민주당은 이미 실시한 투표에 후보 공천 여부도 포함돼 있어 전당원투표를 다시 실시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개정된 당헌은 개정 이전에 이뤄진 전당원투표에도 소급적용 된다는 뜻인데, 중앙위 논의 과정에서 부칙 조항으로 이런 의미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무공천 조항을 억지로 살려두면서 원하는 효과를 얻으려다 보니 이런 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무리수를 이낙연 대표는 ‘책임정치’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양손의 떡을 들고 모두 취하려는 걸 책임정치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에도 “저 정도면 후보 낼 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맥락을 갖춰가는 것이야말로 책임정치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태도는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 평가가 재보궐선거의 성과에도 영향을 주리라는 점에서 집권 여당이 이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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