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동학개미들의 주식참여에 어려운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상황에 기재부 장관은 얼토당토않은 대주주 3억 규정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다”

“기관과 외인들과의 불평등한 과세를 기반으로 개미투자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기재부 장관을 해임하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해임 요구 게시글 내용이다. 청원 게시자는 주식 양도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 원 이상’에서 ‘종목당 3억 원 이상’으로 강화하기로 결정한 홍 부총리가 해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주주 조건이 강화되면 동학개미가 부담을 느껴 주식을 매도하고, 기관과 외국인이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다수 언론은 청원 내용을 기사에 인용했으며 “동학개미가 뿔났다”는 제목을 달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주주 기준 조정이 동학개미에게 피해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단일 주식 종목을 3억 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는 ‘동학개미’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단일 주식 종목을 3억 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는 전체 투자자 중 상위 1.5%에 해당한다. 분산투자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단일 종목 3억 원 이상 보유자는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뿔난 동학개미’ 프레임은 지난 6월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때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2천만 원 이상의 주식 양도차익을 얻은 투자자에게 2023년부터 양도세 20%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과세 폭탄에 동학개미가 뿔났다”·“중산층 될 사다리가 끊겼다”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는 기준을 5천만 원 이상으로 상향했고 언론은 “동학개미가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불필요한 변동성을 초래한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재차 압박했다. 민주당 자본시장특별위원회(위원장 김병욱)는 28일 연합뉴스에 "현행 대주주 과세 범위 확대를 유예하고 증권거래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주식 투자자 중 상위 5%인 30만 명이 연 2천만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주식 상승률을 10%로 계산하면 2억 원을 한 종목에 넣어야 양도세를 내는 것이다. 올해 1인 가구 중위소득(2108만 원)을 주식으로 벌어들이는 이들은 일반적 의미의 ‘개미’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뿔난 동학개미’가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10월 홍 부총리 해임 청원이 등장하자 언론은 "동학개미가 뿔났다"며 청원 동의자 증가 추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다시피 했다. 주요 기사 제목은 <홍남기 '대주주 3억 유지'에 뿔난 개미들…"해임하라" 청청원 6만명>(뉴시스), <'3억 대주주'에 분노한 개미들, '홍남기 해임' 10만명 넘었다>(중앙일보), <"대주주 3억원 정책 고수하는 홍남기 해임하라" 靑 청원 11만명 돌파>(뉴스핌), <'대주주 3억원'에 뿔난 개미들…'홍남기 해임 청원' 12만 돌파>(뉴스토마토), <홍남기 해임, 청와대 답변까지 5만 남았다>(쿠키뉴스) 등이다.

주식 카페 일부 네티즌은 ‘홍남기 해임’ 실시간 검색어 챌린지(특정 단어를 포털에 반복 검색해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올리는 행위)를 벌였다. 조선일보·뉴시스·국민일보·한국경제 등 언론은 “개미들이 뿔났다”며 실시간 검색어 챌린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사진=네이버 기사화면 갈무리)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9일 <주식 과세 대폭 후퇴, 원칙·약속 다 깨자는 건가> 사설에서 “정부·여당이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강화방안을 대폭 허물고 있다”면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 역행할 뿐 아니라 애초 약속을 뒤집는 일이다. 이른바 ‘동학개미’ 보호를 명분으로 드는데,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0일 <주식양도소득세 과세 방침, 정치 논리로 후퇴해선 안 된다> 사설에서 “과세기준이 3억 원으로 확대된다 해도 과세 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1.5%인 9만 명에 불과하다”면서 “대상자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51만 명)의 20%에도 못 미친다. 이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연말에 주식을 한꺼번에 내놓아도 증시 기반 자체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아무리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돌리기 위한 취지라고 해도 이런 식의 특혜는 용인할 수 없다”면서 “더구나 주식 한 종목을 3억 원 넘게 보유하는 이들은 ‘동학개미’가 아니라 ‘주식 부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일부 주식 부자들의 주장에 휘둘려 ‘과세 형평’ 원칙을 저버리려는 여당에 유감을 금할 길 없다”고 강조했다.

‘동학개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관·외국인의 주식 매도를 받아내는 개인투자자를 뜻하는 말이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2030세대의 소액 주식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동학개미’ 열풍이 가속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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