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책방을 좋아한다.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도 좋아하지만, 집과 인접한 동네 작은 책방을 사랑한다. 낮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책방을 발견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책방에 들어가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방 주인은 책을 읽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책방 안은 고요하다. 모두 조용조용 말하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책방에는 새책과 헌책이 공존한다. 새책이 책장에 정갈하게 꽂혀 있고 한편에 주인이 간직하고 있던 책이 혹은 서점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팔고 간 책이 꽂힌 책장이 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구경하며 이 책 저 책을 만져보다 정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소설 코너에서 후배 소설을 발견할 때도 있으며, 시 코너에서 동기의 시집을 발견하기도 한다. 산문집 코너에서 선배의 산문집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오랫동안 책을 매만지다 가슴에 품고 돌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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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은 책방 주인의 독서 취향과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림책을 모아놓은 곳도 있고, 시집을 모아놓은 곳도 있고, 인문 서적을 모아놓은 곳도 있고, 소설을, 그중에서도 시중에서 찾기 힘든 소설을 모아놓은 곳도 있다. 나는 주로 소설이 많은 서점을 좋아하지만 편애하는 장르가 없다. 어떤 책이든 어떤 장르든 읽어서 흥미롭고 재밌으면 모두 좋아한다. 문장이 좋아서 좋을 때도 있고, 등장인물이 좋아서 재밌을 때도 있고, 전개가 흥미진진할 때가 있고, 구성이 단단해서 좋을 때도 있다. 낯선 작가를 만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책방 주인의 의견을 묻는다. 주인은 개인적 취향을 보태 어떤 점이 흥미로운지, 어떤 점이 별로였는지 말해준다. 또 주인의 추천사가 담긴 한 줄의 문장이 책 표지에 붙어 있기도 하여 추천사를 보고 책을 선택할 때도 있다.

책을 한아름 안고 책방을 나서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책방을 보물처럼 숨겨놓은 동네는 행운을 가진 행복한 동네다. 책방을 통해 따뜻한 온기를 지닌 소소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풀려 나오고 만들어진다.

이사를 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우체국이다. 남들은 가장 먼저 고려하는 입지 조건이 교통과 편의 시설이라지만 나는 우체국이다. 신년을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첩을 사고 수첩에 공모전 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공모전에 소설을 써서 낼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얼만큼을 쓸 것인지 계획을 짜고, 수첩에 기록했다. 공모전 날짜에 맞춰 소설을 완성할 때도 있지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마감일 날짜에 맞춰 쓴 소설을 출판사에, 신문사에 보낼 때 주로 우체국을 이용한다. (지금은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우체국밖에 없었다) 십 년을 넘게 우체국을 이용하고서야 공모전을 통해 등단하였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시인인 선생님이 자신은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곳은 정글이라고 말했다. 나는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라고 말했다. 등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등단 이후는 더 어렵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등단하고 나서야 말뜻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공모전을 다시 준비하고 우체국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없는 시간을 쪼개야하고,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각성하고, 또 각성해야 한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아침 시간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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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쯤 글을 쓰고 출근을 한다. 이것이 유일한 낙이고, 일상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만나서도 안 되고, 모여서도 안 되고, 카페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 오래 머물러서도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글은 집에서 쓰면 되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입장은 다르다. 시대가 바뀌면서 아침에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시대가 바뀌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어제, 오늘과 다를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소수민족은 사멸하고, 소수민족 언어도 소멸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모두 분투 중이기 때문이다. 동네 작은 책방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사멸하고 있다. 책방 그까짓 것이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책방이 사라지면 이야기가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행운의 보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방이 버텨주기를 바란다.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렵겠지만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버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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