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치고 공무원 조직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무원은 민원인들에게 퉁명스럽기 짝이 없으면서, 자기들의 퇴근시간만큼은 끔찍하게 챙긴다. 뭐, 경기가 어려워도 짤릴 염려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공무원 조직을 설명할 때, 칼퇴근이나 철밥통이라는 표현을 써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들도 공무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부 부처만큼 취재가 복잡한 동네도 없다. 해당 부처 출입기자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가 전화하면 적어도 4~5명은 거쳐야 원하는 정보의 담당자를 찾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공무원 머슴론’

▲ 중앙일보 3월11일자 1면.
말하자면 공무원은 불친절의 대명사이면서,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화신이고,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고 사는 ‘공공의 적’이다. 조금 심한 것 같지만, 이렇게 내뱉더라도 항의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왜. 그들은 누구나 싫어하는 공무원이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 조직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른바 ‘공무원 머슴’론이다. 이 대통령은 3월10일 기획재정부로부터 첫 정부부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잘못되면 부도가 나고 직원들에게 봉급을 못 준다. 두 세 달 체불할 수도 있고 파산 직전으로 가기도 한다. 재정 위기가 오고 경제성장은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도 여러분은 감원이 되나.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있나.”

그는 또 “말은 머슴이라고 하지만 과연 국민에게 머슴의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주인인 국민보다 앞서 일어나는 게 머슴의 할 일로 머슴이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서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맥락 없이 아무 때나 내뱉으면 ‘뜬금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대통령의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뜬금없는 소리로 들린다.

우선 공무원 조직이 신년 댓바람부터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타박을 받아야 할 만큼 잘못한 게 뭘까. 비판할 일이 생기면 마땅히 비판해야겠지만, 평소에는 일을 잘하도록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공무원은 머슴’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라, 주말에도 일해라, 등등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지침’이 제시되는 바람에 공무원 조직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인기없는 공무원 조직이라지만 마치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주인없는 똥개 걷어차듯, 아무 때나 툭툭 걷어차는 것은 옳지 않다.

젊은 공무원들의 능력과 도덕성, 국무위원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아

그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머슴’ 취급을 한 공무원들 대다수는 사실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이다. 특히 행정고시나 외무고시를 통해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사무관들은 물론 공채를 통해 공무원에 임용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나름의 경쟁력과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봐야 한다.

▲ 경향신문 3월11일자 4면.
대다수 젊은 공무원들의 능력과 도덕성의 평균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새롭게 임명한 국무위원들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의 초대 장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동산 투기와 논문 표절, 자녀 이중국적과 각종 세금 탈루 등 허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도덕성 검증 단계에서 하도 문제가 심하게 불거진 탓에 능력이나 품성에 대한 검증은 거의 이뤄지지도 않았다.

공무원을 머슴이라면, 장관은 머슴의 관리감독을 맡아야 할 ‘마름’에 해당한다. 마름의 도덕성과 능력, 품성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힘없는 일반 공무원들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만약 도덕성이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리더십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장관들을 대신해 공무원 조직 휘어잡기에 나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공무원 조지기’는 정말이지 뜬금없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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