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기아 타이거즈가 치열한 5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스 브룩스의 이탈은 뼈아팠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며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간 브룩스는 그렇게 올 시즌을 끝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아내와 딸은 큰 문제가 없지만 아들은 여전히 큰 고통 속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기아 선수들은 브룩스 가족을 위해 힘을 내고 있다. 모자에 그들을 위한 문구를 적었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뛰고 있다. 비록 에이스 부재로 인해 아쉬움은 크지만, 멀리서나마 하나가 된 기아는 그렇게 가을 야구를 위해 힘을 내고 있다.

브룩스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다. 워낙 강력한 존재감을 보였던 브룩스는 그 자체로 최고였다. 그런 자리에 20살 어린 투수인 김현수가 등장해 가능성을 보였다. 한 차례 잘 던졌다고 최고가 될 수는 없다.

키움과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20살 김현수가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기아의 핵심인 양현종이 3이닝만 막겠다는 생각으로 던지라는 조언을 할 정도였다. 과한 기대보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를 하라는 덕담이자 당부였다.

정교한 교타자와 강타자가 조화를 이룬 키움은 만만치 않은 팀이다. 최근 경기력이 좋지 않아 연패에 빠지기는 했지만 신인이 상대하기에 쉽지 않은 팀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런 점에서 김현수의 호투는 놀랍다.

KIA 타이거즈 우완 김현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현수는 롯데로 간 안치홍의 보상선수로 기아로 옮긴 선수다. 롯데를 떠나며 펑펑 울었다는 이 어린 선수가 기아에서 제대로 자리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가 올해 등판한 경기에서 기록한 내용들은 잘못된 보상 선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기아로 온 김현수의 첫 데뷔는 5월 29일 LG전이었다. 1과 1/3이닝 동안 2안타만 내주며 나름 선방을 했다. 그렇게 김현수는 8월부터는 추격조로 불펜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8월 4일 LG전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은 채 6 실점을 하고는 1군에서 말소되었다.

다행스럽게 확대엔트리가 되면서 다시 1군에 등록된 김현수는 8월 19일 LG전에서도 무너졌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으며 3 피안타, 2 볼넷으로 4 실점을 했다. 3 자책이기는 하지만, LG를 상대로 두 번의 등판에서 아웃카운트 2개에 무려 10 실점을 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김현수의 8월 평균자책점이 21.60이었다. 물론 불펜 투수이기 때문에 방어율은 급등했다 급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량 실점을 해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그런 김현수에게도 잘 맞는 팀이 존재했다. 그게 바로 키움이었다.

브룩스가 가족 교통사고로 팀을 이탈한 상황에서 다시 1군에 콜업된 김현수는 9월 23일 키움전에 3회부터 롱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경기에서 김현수는 5이닝 동안 1 실점만 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LG를 상대로 대량 실점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2군에서 제구를 가다듬고 경험치를 쌓으며 폭발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불펜에서 던지던 그가 선발 기회를 잡았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기아에서 김현수는 주어진 기회를 잘 잡았다.

KIA 타이거즈 오른손 투수 김현수가 1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방문 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리를 챙긴 뒤, 취재진과 멀리 떨어진 채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좋은 투구를 했던 기억이 있는 키움과 다시 대결을 한 김현수는 인생투를 선보였다. 낙차 큰 커브는 일품이었다. 좋은 제구로 상대 몸쪽을 파고드는 강력한 직구는 보는 이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놀라울 정도의 구속은 아니지만, 낙차 큰 커브와 함께 좋은 제구로 다가온 직구는 상대 타자들을 힘들게 했다.

2회 러셀과 변상권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앞선 경기들에서 그가 대량 실점을 한 이유와 명확한 차별성을 가지는 대목이니 말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단 것은 김현수가 그렇게 1군에서 얻어맞으며 성장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단순하게 LG가 아닌 키움이기에 잘 던졌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게 성장 과정이라고 본다면 김현수의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이민우와 임기영이 기대보다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수의 호투는 다음 시즌 선발 한 자리에 대한 기대치를 키웠다. 키움전에서와 같은 투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김현수는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 상대를 압도하는 직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대를 요리할 수 있다.

김현수는 상대를 윽박지르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다. 이번 경기에서 돋보였던 것은 커브다. 낙차 큰, 소위 폭포수라고 표현되는 듯한 커브의 각이 상대 타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제구가 담보된 직구는 강력함을 더욱 키웠다.

경험이 중요하다. 앞으로 수많은 상대들과 대결해야 하는 김현수에게 이 경기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기가 최고의 성적으로 남는 이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경기를 시작으로 그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지 곱씹어야 할 이유도 명확해졌다.

낙차 큰 커브와 슬라이더, 좋은 제구력으로 무장한 김현수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투수다. 제구를 보다 익힌다면 김현수는 기아에게 가장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양현종을 존경하는 만큼 그의 뒤를 잇는 기아의 에이스로 성장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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