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MBC 기자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은 제보자가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뿐만 아니라 감사·소송 등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감사 신고자, 해고무효소송재판 증인 신분으로 MBC로부터 2차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2014년 A씨는 MBC 한 시사프로그램에 제보를 했다. 해당 프로그램 소속 B기자는 A씨에게 연락을 취했고, 이후 두 사람은 기자와 제보자로서 연락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락이 이어지면서 사적 대화를 넘어 B기자는 A씨에게 성적 관계를 원한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피력하기에 이르렀고 2015년 7월, B기자는 서울소재 한 숙박업소에서 A씨의 반복적인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강제 성추행했다.

A씨는 2017년 5월 이 사건을 MBC 감사실에 신고했다. MBC 감사실은 약 10개월 후인 2018년 2월 B기자에 대한 징계 의견을 냈고, MBC는 같은 해 3월 해고를 결정했다. 이에 B기자는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1, 2심 법원은 B기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MBC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후 A씨는 B기자를 상대로 강제추행 혐의 고소를 진행했다. 법원은 지난 4월 B기자에게 벌금 1천만원과 80시간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1년을 명령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이 사건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지속적인 고통을 입었고, 특히 관련 민사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당시를 회상하며 추궁받게 되면서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은 사정도 있다"고 했다. B기자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A씨가 재판 증인으로 서게 된 탓에 2차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신 판사는 "그 결과 뒤늦게 이 사건 고소에 이르게도 됐다. 피고인은 당시 피해자의 태도를 오인하여 주관적으로 행동하게 되면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에서의 남성으로서의 호감표시와 의사소통 방식이 상대방 여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관하여 편의적으로만 해석했고, 그 결과 이 사건 범행이 발생했는데도 상당 기간 이를 범죄로 인식조차 못한 채 그 후 일련의 상황에 대처하게 되면서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피해를 키워 온 도의적, 법률적 책임이 크다"고 했다.

(사진=미디어스)

이 같은 감사·소송 과정에서 A씨는 MBC 감사실의 개인정보 요구, MBC 법무팀의 해고무효소송 증인출석 요구 등으로 2차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고 있다.

A씨는 MBC 감사실에 사건을 신고하고 카카오톡·문자 메시지 등 관련 자료를 제출했으나 직후 감사실로부터 '원하는 징계가 내려지지 않을 경우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이 같은 감사실의 반응에 본격적인 감사 착수 이전부터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기를 원했던 A씨는 B기자가 죗값을 치르기를 원하고, 타당한 징계가 내려지지 않을 경우 그에 맞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MBC 감사실은 A씨 피해사실 입증을 위한 추가자료를 요구했다. 추가 통신기록, 사건발생 이후 A씨의 병원진료 기록 등이다. A씨는 이들 자료를 제출하면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느껴 개인정보를 가림 처리한 후 관련 자료들을 제출했다. 그러자 MBC 감사실로부터는 개인정보를 명기하지 않으면 감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제출한 자료에 자세한 내용이 있어 판단이 가능할 것인데 계속 저의 개인정보를 전부 오픈해서 보내라고 했다"며 "제가 병원기록을 조작할 리도 없고, 제 회사도 아닌 곳에 개인정보를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반복된 감사실 요구에 주민등록번호, 환자번호 등 개인정보 일체를 다시 제출했다. MBC 감사실은 A씨와의 만남과 통화 등을 통해 A씨 신원을 확보했지만 제출자료의 신빙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포함한 자료 일체를 요구했다.

A씨는 B기자가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한 이후 자신이 재판 증인으로 서게 되는 과정에서 MBC 법무팀과 담당 법무법인으로부터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해고무효소송 제기 후 A씨는 MBC 법무팀으로부터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재판에 서는 것이 두려웠지만 MBC 법무팀의 재판 담당자로부터 '증인으로 나오지 않으면 회사가 질 가능성이 크다', 'B기자가 복직할 텐데 그것을 원하나'라는 취지의 말을 듣고 요청에 응하게 됐다고 했다.

A씨 증인출석 직전에는 법무법인에서 재판 관련 회의가 열렸다. A씨는 이 자리에서 법무법인 변호사로부터 '성추행은 징계사유도 못된다', '트럼프를 보면 멀쩡히 일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고, 회의에 동석한 MBC 법무팀 직원 역시 반복적으로 가해자 측 주장이 맞는 것 아니냐고 물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이 같은 회의내용을 MBC 법무팀에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MBC법무팀으로부터는 B기자 측 변론을 예측하고 연습하기 위한 일종의 '모의재판'이었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이 회의가 '모의재판'의 성격을 갖는다는 설명을 사전·사후에 들은 바 없다며 "왜 이런 얘기를 또 하는 건지, 날 의심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MBC 법무팀은 법무법인을 감쌌다"고 말했다.

오히려 A씨는 정작 재판과 관련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증인으로 서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상대 측 변호사가 어떤 얘기를 할 것이라든지, 재판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해 설명을 잘 해주지 않았다. 재판에 서자 뭣 모르고 나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며 "재판 당일 아침 8시에 MBC 법무팀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오늘 재판인 거 알죠, 꼭 나와야 해요'라는 연락을 받았을 뿐 법정 호수도 모르는 상태로 법원에 갔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재판에 서자 가해자측에서 인신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말들을 해댔고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며 "자세히 설명을 들었더라면 판단이라도 했을 텐데 뭣도 모르고 나갔다가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재판 증인 신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로 느껴졌느냐는 질문에 "MBC가 해고를 하자 B기자는 재심 신청을 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주장과 같은 주장을 (재판에서)계속했다"며 "가해자 때문에 긴 시간 힘들었는데 회사(MBC)때문에도 너무 힘든 일을 겪었다"고 했다. A씨는 재판출석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선 것을 후회하며 MBC에 법무팀 직원에 대한 추가감사를 요청하고, 자신의 재판출석을 결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에 MBC 감사실 측은 자사 직원의 2차 가해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추가조사를 할 수 없고, 재판출석 요구는 법원으로부터 있었다고 답했다. 법원이 증인을 요청했다는 답변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A씨는 법원으로부터 증인요청은 MBC측이 한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A씨는 언론보도에 따른 2차 피해도 호소하고 있다. A씨가 추후 진행한 강제추행 혐의 소송 결과는 지난달 언론에 '성추행 한 지상파 기자의 해고무효소송 제기' 내용으로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4월 있었던 판결을 언론이 발견해 보도한 것이었다. 주요 언론 다수가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A씨는 "이 얘기를 어떻게, 누구에게 들었으며 어떻게 판결문을 입수해서 기사화했을까 놀랐다"며 "사전에 저에게 연락을 해온 것 없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작위로 보도가 나갔다. 이렇게 오픈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판결문을 누구에게도 전달한 바 없다고 했다. 해당 기사들 댓글란에는 2차 가해성 댓글들이 달렸다. A씨는 "제 사건에 대해 상황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고 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분들은 기사 내용 정도만 알지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측은 이 같은 과정들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로 여겨질 소지가 크다고 했다. 설령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설명과 설득이 동반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추가 피해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노선이 활동가는 우선 감사 초기 MBC 측의 피해자 개인정보 요구에 대해 "요구하는 걸 주지 않으면 감사를 접겠다는 건 위력이 작용한 상황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노 활동가는 "감사자는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조사해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감사를 접겠다는 건 피해자가 내 개인정보를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서 "피해자 본인의 기록인지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해도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로 비춰질 수 있다"고 했다.

노 활동가는 경찰의 성폭력 사건 수사 방식을 예로 들었다. 가명조서 등 피해자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사방식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노 활동가는 "경찰의 형사사건 진행 사례를 보면 피해자의 조서나 사건관련 기록들을 가명으로 제출하기도 한다"면서 "이를 비춰보면 관련자료는 개인정보가 가림처리된 대로 사용하고, 대신 감사 담당자가 자료와 원본이 같은지를 대조하는 정도로 '확인됐다'는 문서를 별도로 첨부한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2차 피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A씨가 해고무효소송재판 증인으로서 겪은 일에 대해 노 활동가는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준비 과정에 대해 노 활동가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미리 연습하는 거라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서는 피해자에게 굉장히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노 활동가는 "경찰에서 피해자 신문을 할 때에도 '불편할 수 있지만 나중에 사건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것', '너무 불편하면 대답할 필요가 없고 가능하면 답을 해 달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며 "(MBC 법무팀과 법무법인이)피해자에게 충분히 설명이 안된 채로 이후 모의연습이었다고 말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 활동가는 해고무효소송재판 증인출석 자체를 2차피해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에 따라 가해자의 해고 결정이 번복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판 등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활동가는 "피해자가 법정에 증인진술을 나간다는 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다시 복기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굉장히 힘들 수 있다"며 "MBC측 반박을 위한 참고인 성격으로 A씨가 증인진술을 한 것인데, A씨가 이전까지 예상하지 못한 가해자 측 질문을 받거나 전반적으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재판과정에서 느꼈을 때 이걸 제안한 측에 대한 분노가 훨씬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 활동가는 "선택권은 피해자 본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증인진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증인출석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크게 놓친 부분"이라고 했다.

또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노 활동가는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공개된 판결문만으로 보도하는 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 활동가는 "언론이 모든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에게 확인받고 기사를 내지는 못한다. 판결문 입수 보도 자체가 문제라는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면서 "보도를 할 때 무엇을 신경쓰고 유의해야 할지 언론계 내부의 자정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이어 노 활동가는 "보도를 보면 피해자가 속옷을 입고 움츠러든 채 인상을 쓰는 이미지가 들어가 있어 부적절하다"며 "피해자를 어떻게 재현하는가도 연관이 돼 있다. 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어떤 단어와 이미지를 활용하는지에 대해 성폭력보도지침 등을 참고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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