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A씨의 실종과 북한군에 의한 피살 사태에서 정부대응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A씨의 신원이 특정된 상황에서도 피살에 이르기까지 군당국이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않은 점, 군의 공식발표가 최초 첩보 입수 이후 너무 늦게 이뤄진 점 등이 의문시되고 있다.

그러나 주요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은 이 과정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 '종전선언' UN연설을 문제삼으면서 정부 비난에 집중하고 있다. UN연설 발표를 위해 사건 공개를 고의로 늦추고, 비상상황에도 '종전 이벤트'에 집중해 국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방기했다는 주장으로 사실관계가 다르다. 또한 '이런 대상과 무슨 평화논의냐'는 식의 주장이 사태의 수습과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방부는 21일 실종된 A씨가 22일 밤 9시 40분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됐다고 24일 발표했다.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에 따라 이 사건 시간대별 상황을 살펴보면, 군은 22일 오후 3시 30분경 북한 등산곶 남쪽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A씨가 발견된 정황을 포착했다. 정부는 22일 밤 10시 30분경 북한군이 A씨를 사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약 6시간 동안 북한군이 A씨를 바다에서 구조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 끝에 A씨가 피살됐지만 군은 대북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23일 새벽 1시부터 청와대에서는 긴급 관계장관회의(NSC)가 열렸다. 새벽 1시 26분부터는 16분간 문재인 대통령 UN총회 연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아침 8시 30분 피격 사실을 보고 받고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북한에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오후 1시경 군은 A씨 실종에 대해 아직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고, 22일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분석 중이라고 발표했다. A씨 사망여부도 모른다고 했다. 대통령 지시를 받은 군당국이 UN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시각은 이날 오후 4시 35분이다. 10시 50분경 일부 언론에서 A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됐고, 시신이 소각됐다는 보도가 이뤄졌다. 북한은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침묵했고, 문 대통령은 24일 오전 9시 첩보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고 받은 뒤 정부 입장 발표를 지시했다. 군은 이날 오전 11시에 공식발표를 내놨다.

북한의 이 같은 대응은 '코로나19' 유입 차단에 따른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7월 탈북민 김 모씨가 강화도를 통해 개성으로 월북하면서 북한은 국가적 차원에서 코로나19 유입에 대응, 국경 완충지대 접근 인원을 동물까지 포함해 무조건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화장한 행위는 명백한 반인륜적·비인도적 행위라는 점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우리 군이 A씨 피살 사태와 관련해 실종단계부터 피살에 이르기까지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첩보 입수 후 A씨 생존시간동안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론 등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군이 A씨의 월북 가능성을 높게 점친 데 대해서도 A씨가 슬리퍼를 가지런히 정리해두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표류했다 등의 정황근거만이 제시돼 A씨의 유족의 반발과 함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민감한 사안이 담긴 첩보인 만큼 사실관계·신빙성 확인과 발표에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지만 명확한 진상규명과 정부대응 적절성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4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실종 공무원 북한 총격 사망 사건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야권을 중심으로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사실상의 정치적 공세가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24일 국회에 모여 정부가 대통령 UN연설 때문에 이 사건을 은폐했다며 "도발 은폐, 종전선언 대통령은 사죄하라"고 외쳤다. 배현진 국민의힘 대변인은 "대통령이 UN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사건 공개를 늦췄다면,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우리 국민이 북의 총격에 피살돼도 김정은과의 종전선언이 더 중요한 것이냐"고 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박했다. 화상으로 이뤄진 UN 연설은 이미 15일에 녹화해 18일 UN으로 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 해명에 대해 국민의힘은 "비판을 모면하려는 옹졸한 핑계"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9월 25일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사 및 사설 갈무리

25일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A씨 피살 사건과 대통령 UN연설을 연계시킨 정부비판에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北이 사람을 바이러스처럼 소각해도 하루를 숨긴 文… 대통령이 있고, 정부가 있고, 軍이 있고, 나라가 있는가>에서 "국민에게 공개한 건 총살 이틀 뒤였다. 이틀 뒤 발표는 사실상 숨긴 것"이라며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3일 새벽 1시 반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화상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강조했는데 북한 만행이 바로 알려져 재가 뿌려지는 상황을 피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우리 국민이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됐는데 그 녹화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게 해야 했나"라며 "이 엽기적 살인극을 별일 아닌 것으로 본 것이다. 보고 받고 북을 이해하고 감쌀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집단이 무슨 같은 민족이고, 이들과 무슨 평화 논의인가.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종전 선언' 운운할 수 있으며, 군인들은 그에 영합하나"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민간인 살해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한다>에서 "비상 상황이었음에도 북한에 유화적인 내용이 담긴 연설을 수정 없이 내보낸 건 '종전'이벤트에 집착해 국민의 생명은 뒷전으로 미뤄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청와대는 이번 사건이 문 대통령에게 언제 어떻게 보고됐는지, 또 종전선언 연설이 그대로 나간 이유는 무엇인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北 '박왕자 피살' 12년 만에 더욱 충격적인 만행 저지르다>에서 "정치권에선 23일 국자세회에 종전 선언을 호소한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의식해 공개시점을 늦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며 "만에 하나 청와대와 군 당국이 사전에 북한의 만행을 알고서도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쉬쉬했다면 이 또한 책임져야 마땅하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대통령 UN연설과 이번 사건을 연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공유하면서 "두 사건은 청와대의 해명대로 별개의 건으로 보는 게 맞다.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야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정쟁으로 가져가야 야당에게 좋을 거 하나도 없다"며 "객관적으로 봐도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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