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정경제3법'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재계와 보수·경제지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쟁점인 상법 개정안의 내용이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며 '1주 1표'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운영의 불평등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1주 1표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 역시 만만치 않다.

동아일보 김광현 논설위원은 24일 칼럼 <경제민주화는 선거운동이다>에서 "민주화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1인 1표'"라며 "경제민주화는 이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불평등 해소나 약자와 강자의 균형을 맞춘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너무 막연하다. 노동운동, 소비자운동도 아니고 '1인 1표'는 더더구나 아니다"라고 했다.

동아일보 9월 24일 <[오늘과 내일] 경제민주화는 선거운동이다>

김 논설위원은 '공정경제3법'을 거론하며 "분명한 것은 경제민주화가 경제경영학계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의 정책이나 대선후보자들의 선거공약에 주로 등장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일반 국민들이 '공정경제3법'의 내용과 의미를 알기 힘들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경제와 정치를 두부 자르듯 나눌 수는 없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용어에 가깝다"며 "한마디로 경제민주화 주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한 선거운동"이라고 썼다.

이어 김 논설위원은 "대기업, 재벌 총수에 대한 견제 장치만 둘 게 아니라 거대 노조의 기득권에 대한 견제도 있어야 균형이 맞다"면서 "한국 노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다. 노조 가입률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철밥통인 공공부문이 68%로 민간의 10%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7%로 OECD 최하위권이다. 특히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12%로 OECD 평균 32.2%에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노조 조직률은 11% 수준이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8%에 육박한다.

조일훈 한국경제 편집국장은 18일 뉴스레터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에서 김 논설위원과 일치하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1인 1표를 추구한다"면서 경제민주화를 '시장경제를 부수는 좌파적 공산주의 이념의 진격', '대중의 값싼 입맛을 추수하는 포퓰리즘 정당의 위험한 도박'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조일훈 편집국장 9월 18일자 뉴스레터

그러나 재벌총수 일가의 부당이득을 막겠다는 취지의 '공정경제3법'에 대해 '1주 1표'를 내세워 반대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 최우성 산업부장은 24일 칼럼 <'1주1표제'를 이야기하는 당신에게>에서 현재 공정경제3법을 둘러싼 논란을 19세기 식민지 시대 종말 과정에 빗댔다. 미국 노예해방과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생도맹그(현재 아이티)의 사례에서 '독립'의 조건은 노예주에 대한 '배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소유권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성벽 앞에서 상식과 정의는 무력했다"는 것이다.

한겨레 9월 24일 <[편집국에서] ‘1주1표제’를 이야기하는 당신에게>

최 부장은 "법으로 인격이 주어진 존재(법인)인 기업은 국가나 민족 같은 정치공동체와는 구성 논리나 운영 논리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 부장은 "1인1표는 자본주의의 뼈대라는 생각에 오늘날 대부분 동의한다"면서 "다만 둘 사이엔 으레 팽팽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1인1표의 정신과 1주1표의 육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건강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장은 "개정안이 현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인 1주1표를 허물어뜨렸다는게 반대 주장의 핵심 논거다. 말하자면 '헌정 파괴'란 얘기"라며 "정부·여당안에 보완할 대목도 있을 뿐더러, 입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충분이 존중되고 진지한 숙의를 거쳐야 하는 건 틀림없다. 다만 1주1표를 절대진리인 양 내세워 개혁 입법 움직임에 '원천 반대' 목소리만 높이는 재계 일각의 근본주의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사회가 총수의 뜻을 따르는 거수기 집단으로 전락하고, 결국 주주평등의 원칙이 짓밟히는 건 국내 기업에선 지금도 낯익은 풍경"이라며 "더군다나 정부·여당안에 대한 보완책이라며 슬그머니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내미는 태도는 치졸하기 그지없다. '헌정 파괴' 주장의 핵심 논거로 삼은 1주1표를 뒤돌아서 제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사진=연합뉴스)

재계 등 경영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를 도입하더라도 ▲일부 주주에 특별히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지배주주 권한을 늘리는 '차등의결권'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 발생 시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싸게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신주인수선택권'(일명 '포이즌필') 등의 도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회의원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추경호, 권성동 의원 등은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경제3법'에서 빠진 '집중투표제'를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내이사를 뽑을 때 한주 당 선출하는 이사 수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집중투표제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고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지만 이번 정부 개정안에서 빠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집중투표제의 단계적 도입을 약속했지만 재계 반대로 무산됐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벌개혁은 둘째치고 합리적인 기업운영의 밑돌을 놓아주려는데 중요한 나사 하나 빠진채로 국회로 넘어 온 것"이라며 "관료들은 한 발 뺐지만 민주당은 거대여당으로서 개혁입법을 완수할 책임감을 가지고 누락된 집중투표제를 보완해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정경제3법'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이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재벌 기업집단의 대표적 부당이득 사례로 꼽히는 '일감몰아주기' 감시 대상이 기존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확대된다. 담합 등의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은 폐지된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지분율은 20%에서 30%로 상향된다.

상법이 개정되면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된다.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소액)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 도입된다. 기존에는 선임된 이사 중 감사를 선임했다면 감사를 별도 절차로 뽑게 된다. 이 때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대주주에 대한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은 금융지주가 아니면서도 금융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복합금융그룹에 대해 자본 적정성을 점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삼성·한화·미래에셋·현대차·교보·DB 등 6개 비지주 금융그룹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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