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광택 칼럼]

비례성의 원칙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휴가’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 상당수는 특검이나 국회 국정조사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9월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7%p)에 따르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이 군복무 시절 군 휴가 미복귀와 관련해 병가 연장을 위해 당시 보좌관이 군 부대에 직접 전화를 했다는 특혜 의혹에 대해 특검이나 국회 국정조사를 하자는 주장에 대해’ 찬성이 55.4%로 반대 39.2%로 한계 허용 오차 범위 밖에서 높게 조사됐다. 잘 모르겠다는 5.4%였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연장 특혜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언론이 몇 달 동안 집요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사이 심지어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하자는 야당의 주장에 여론이 호응하였다. 최순실 특검에 25억원이 들었다. 과연 병사 한 사람의 휴가 연장 특혜여부의 조사에 거액의 국고와 막대한 인력을 들여야 할까?

이 문제로 온 나라가 뒤끓게 된 데에는 언론의 엄청난 전파력 때문이다. 법학에서는 <비례성>의 원칙이 있다. 쉽게 말해 “꾼 만큼 되돌려 준다”라든지,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다”라든지 원인과 결과의 크기가 동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지었다 해서 엄청난 보복을 가해서는 안 되며, 그 잘못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예프로그램에 빠진 나머지 시험을 망친 경우를 생각해보자. 본인과 부모는 마침 그때 방영된 연예프로그램을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필 그 시간에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본인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언론대중은 대체로 언론이 이끄는 대로 수동적으로 이끌려간다. 언론이 설정한 아젠다의 틀 속에 자기도 모르게 갇히게 된다. 또 호기심이 움직이는 대로 빠져들게 된다. 일상의 우리는 점차 언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삶은 아침뉴스가 정한 아젠다로 하루를 살아가고 저녁뉴스로 하루의 아젠다를 마무리하는 게 아닌가.

과거의 언론 아카이브를 보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언론은 시대정신의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 2020년 가을 현재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 당연히 <코로나19의 극복>이다. <공동체의 안전>이 국가적 아젠다이자 글로벌 아젠다이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언론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태일 3법'

이와 관련하여 최근 적지 않은 국민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3법’의 이름으로 국민동의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태일 3법'은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기처벌법) 제정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들에까지 확대 적용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230만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의 제정을 말한다. 모두 <공동체의 안전>을 지향하는 것이다.

‘전태일 3법’ 법안은 9월 22일까지 각각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서 성립 조건인 10만 명의 동의를 채웠다. 국회는 올해 1월부터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청원 중 30일간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소관 상임위에 넘겨 심사토록 하였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는 헌법 26조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작업장 부근에서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산화했다. 그런데 50년을 지난 현재 ‘주 40시간’ 규정은 커녕 근로기준법 적용을 아예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적용을 받는 노동자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청원은 근로기준법의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제한하는 제11조를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 택배기사·대리운전 기사·학습지 교사 등을 말하는 특수고용·플랫폼 고용 노동자까지 근로자에 포함하도록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조항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게 청원 내용이다.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바꿔 간접고용노동자 등 원청사용자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처벌법은 노동자의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중기처벌법 제정을 위한 청원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대표 청원인으로 나섰다.

국내 산재 사망자는 한 해 2,400명, 하루 평균 7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언택트거래가 급증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올해 상반기에만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업무관련으로 사망한 우편집배원이 무려 46명이라는 5월 1일 KBS 방송보도는 충격적이다. 집배부하량시스템에서 집배원 휴식시간이 시간당 1.8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019냔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제9조의2에 따라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 1,420개소의 명단을 공표했다. ‘산재 미보고(은폐) 적발현황'을 보면 연 평균 930여건의 산재은폐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노동부가 근로감독 등으로 적발해낸 건수는 평균 1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2020년 1월부터 새로운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사용자 단체들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김용균법’이 유명무실해진 탓이 크다. 노동계가 요구해온 ‘위험작업 2인1조’가 법제화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기처벌법은 안전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전태일 사후 50년이 자나도록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35년에 채택된 주40시간 근로원칙을 승인하는 제47호 ILO 협약을 2011년에 비준하고서도 아직도 ‘주64시간’을 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 금지 협약(제29호)은 1930년에,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은 1948년에,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은 1949년에 채택된 것이다.

전태일 50년주기를 맞아 ‘전태일 3법’의 제정과 ILO핵심협약 비준이야말로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오늘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 이광택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78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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