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KBS에서 제작진, 출연진, 임직원 등의 공적 발언과 관련된 규정을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23일 KBS 이사회는 ‘KBS 임직원 및 출연자 공적발언 관련 규정 등 원칙과 실행 관련 보고 요구안’을 상정, 가결했다. 다음 이사회에서 KBS의 현황 보고를 받고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사진=KBS)

‘KBS 임직원 및 출연자 공적발언 관련 규정 등 원칙 보고 요구안’은 강형철 이사가 발의했다. 강 이사는 “KBS 임·직원에는 언론인, 직원, 임원, 이사까지 포함된다. 이들은 방송뿐 아니라 KBS 자체 유튜브, SNS, 홈페이지 등 공식 채널 외에도 타매체에 출연하거나 기고, 개인 SNS계정에 글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러한 모든 공표 행위에 주관적 표현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KBS의 의견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며 “어떻게든 원칙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강 이사는 “SNS 등 개인적인 공간뿐 아니라 KBS 내에서도 기자가 기사를 쓸 때, 앵커 브리핑을 할 때 주관적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어느 한도 내에서 해야 하는지 등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그 원칙이 무엇인지, 어떻게 처리하는 게 맞는지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KBS에 이미 관련 원칙이 있는데 유명무실화됐다면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결정하는게 아닌 KBS 구성원 내부에 치열한 토론을 통해 원칙을 마련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이사의 제안에 이사진은 동의했다. 이사 전원은 요구안을 통과시켜 KBS 경영진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 받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결정했다. 다만, KBS 이사회의 논의 과정이 제작진의 제작 자율성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여러차례 당부했다.

박옥희 이사는 “모든 신문사는 외부 칼럼에 ‘본사 의견과는 다르다’는 걸 꼭 붙이지만 방송은 그게 어렵다보니 그러한 기준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이해해 동의한다"고 말했고, 류일형 이사는 “중요한 문제"라며 "예방적 차원에서 원칙을 세우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동의했다.

김영근 이사는 “전 KBS 기자 출신이지만, KBS 직원들처럼 다른 언론사에 비해 자기규제를 강도 높게 하는 곳이 없다고 자부한다”며 “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제기된다면 혹시라도 직원들이 느낄 자기규제 압박이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김태일 이사는 KBS 경영진에게 충분한 자료수집을 당부했다. 김 이사는 “안건 주제가 무겁고 다루기 힘들다. 집행부는 폭넓게 주변의 의견을 봐가면서 관련된 판단 논거들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요구안을 보면 공적 발언의 주체를 ‘KBS로 식별되는’, 대상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행위의 문제는 ‘주관적 의사표명’으로 나와있다”며 “애매모호해 어떻게 규범화할지 고민이다. 힘든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실효성 있는 규범을 정말 잘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황우섭 이사는 “현재는 임직원이 외부 언론활동을 할 때 상부 허가 규정이 있다. 이 안건은 방송 출연자까지 포함되는 것이기에 표현의 자유, 보도제작 독립성에 미칠 영향을 심도있게 검토해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KBS 가이드라인에는 ‘소셜 미디어 이용 원칙’이 명시돼 있다. KBS 직원들에게 개인적인 용도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동시에 공영방송의 구성원으로서의 책무와 영향력을 고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SNS 이용 시에는 사내 규정, 취업 규칙, 윤리 규정 등의 제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해외 공영방송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1일 취임한 팀 데이비 영국 BBC 사장은 3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첫 연설에서 방송사 직원들이 SNS 등을 통해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 사장은 “BBC가 반드시 공정성에 대한 지지와 다짐을 가져야 한다”며 “칼럼리스트나 특정 당파의 활동가라면 소셜미디어가 유효한 선택일 수 있지만 BBC에서 일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형철 이사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 개인의 SNS뿐 아니라 앵커브리핑 등에 주관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나오면 이를 판단하고 답할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이사회나 경영진이 정하는 게 아닌 KBS 종사자들이 함께 돌아보고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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