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성착취물 제작·유포 사건, 일명 'n번방' 보도가 2차 피해를 유발했다는 지적은 앞서 여러 번 제기됐다.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는 ‘피해자 비난 보도’ ▲미성년자임을 강조해 피해자다운 이미지를 고착화한 ‘피해자 무력화 보도’ ▲피해자 신상을 노출한 보도, 가해자의 모습과 발언을 상세히 묘사한 ‘가해자 서사 집중 보도’ ▲가해자를 ‘악마’·‘반사회적’ 등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한 ‘가해자 타자화 보도’ ▲필요 이상으로 범죄 행위의 선정성과 잔혹성을 부각한 ‘선정적 보도’ 등이다.

16일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미디어와 N번방 성착취 사건 2차 피해> 토론회 (사진=언론인권센터 유튜브)

하지만 이러한 요소를 전부 거세한 보도가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n번방 보도행태를 보며 들었던 고민을 털어놨다. 16일 언론인권센터는 <미디어와 N번방 성착취 사건 2차 피해> 토론회를 열고 취재기자와 전문가들을 불러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조명했다.

박정훈 기자는 “언론사의 2차 가해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수차례 논란이 된 바 있기에 현재 언론사들은 피해자에 대한 서술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러운 편"이라며 "직접적으로 피해자 신상을 언급한 조선일보, MBN 두 건의 기사를 제외하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을 제목에 드러내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피해자를 공격할 의도를 갖고 쓰인 기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언론들이 가해자를 악마화하거나 가해행위의 끔찍함을 설명하는 기사가 쏟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기사로 독자들이 가해자에게 공분을 나타내기 때문에 기자들이 독자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기사들이 성착취를 일상과 거리가 먼 ‘특수한 일’ 처럼 보게 되고, ‘가해’가 일어나는 구조를 외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대부분 성폭력 관련 보도에서 반복되는 형태로, 얼마나 잔혹한 범죄였는지, 얼마나 가해자가 나쁜 행위를 했는지를 설명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 3월 9일자 <n번방 추적기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박 기자는 대표적으로 국민일보의 3월 9일 자 <[n번방 추적기①]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기사를 보며 고민됐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최초 보도한 한겨레 기사보다 많이 읽혔으며 국민의 관심을 단숨에 끌어낸 파급력 있는 보도였다. n번방의 실체를 알린 ‘불꽃팀’이 함께했으며 구조적인 문제를 짚는 시리즈 보도의 첫 기사였다.

하지만 n번방의 끔찍한 영상을 묘사하는 것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디지털 성폭력이 이뤄지는 행태나 구조보다는 구체적인 피해 사실의 잔인함이 강조됐다. 일부 부정확한 서술도 있었다. “여성의 몸 안에 애벌레들이 기어 다녔다”는 부분은 국민청원에도 언급되는 등 여러 매체의 제목으로 인용됐지만 ‘일본 비디오’ 장면이었다.

박 기자는 “일종의 오보였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서술이 담겼으며 문제적 표현들이 담겼다. 하지만 n번방 성착취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은 기사였기에 여러모로 고민을 던졌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적인 문제를 짚으며 과장된 서술 없이 쓴 기사가 독자들의 반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질문이 남았다고 밝혔다.

박정훈 기자는 선정적인 기사 제목이 달리거나 ‘음란물’, 몰래카메라‘ 등이 고민 없이 사용되는 것은 언론사 내부 교육과 자성을 통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음란물’, ‘음란영상’ 등은 피해자를 폭력의 문제가 아닌 음란함의 문제로 보게 만들며, ‘포르노’는 상업성을 가진 용어로 범죄 묘사에서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몰래카메라’는 “유희적 의미를 담고 있어 범죄의 심각성을 느끼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부 매체들은 ‘불법촬영물’로 용어를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박 기자는 “제목을 달고 기사를 지시하는 데스크들의 젠더 감수성이 낮다”며 “언론사 내부에 중년층 이상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압박이 효과적인 개선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 기사 제목에 '몰카'를 쓰면, 트위터 유저들이 “#몰카라는 단어 쓰지 마세요. 불법촬영물이 맞습니다”는 댓글을 달았다. 기자들이 실제로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채윤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언론이 피해자를 다룬 방식은 가해자와 다르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을 기사 클릭유도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했고, 그들을 ‘피해자’로 정형화해 기사 대상으로 삼았다. 자극적인 소재로 사건관련자들을 소유물처럼 대했으며 기사 유입 유도를 위해 피해자의 고통과 호소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공정한 저널리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관점을 통렬히 비판해야 한다”며 “언론은 피해자의 피해가 왜곡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가해자를 대변하거나 가해자를 전시하지 않도록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재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 결과 자료 PPT

한편, 이날 언론인권센터는 'n번방'과 관련해 방송사가 제작한 유튜브 영상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인권센터가 1월부터 5월까지 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모니터링한 결과, MBC ‘엠빅뉴스’-‘14F’, KBS ‘크랩’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모니터링을 진행한 안규원 활동가는 ‘엠빅뉴스’, ‘14F’의 n번방 관련 영상들이 가해자들의 비인간적인 태도와 가해자의 서사에 집중해 가해자를 악마화했으며, n번방 피해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불필요한 자극적인 피해 영상을 넣었다고 지적했다. KBS ‘크랩’도 자극적인 문구를 썸네일에 넣으며 범죄행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정훈 기자는 방송사 유튜브 영상이 자극적인 이유에 대해 “자극적 콘텐츠가 소비되는 유튜브 플랫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뉴미디어가 기존 미디어에서는 조직도 허약하고 조회수가 안 나오면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구조에 놓여있어 일단은 조회수가 잘 나와야 한다는 심리에서 방송 보다 자극적인 영상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차 피해가 심각하기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유튜브의 경우 플랫폼과 정부가 일정 수준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단체나 이용자들이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해당 콘텐츠가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지 신고하고 유튜브가 이에 적극적으로 답변하게 협업해 나간다면 개선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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