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곽노현 교육감의 소식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10년 선거에서 박명기 당시 후보에게 후보단일화를 해주는 대가로 2억원 가량의 금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도덕성에 절대적인 우위를 보여야 할 진보교육감에게 제기되는 의혹으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다.

곽노현 교육감 본인도 금품을 전달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곽노현 교육감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명기 당시 후보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어 개인적인 지원을 했다'며 대가성이 없는 돈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정치인의 언어라기 보다는 피고인의 언어에 가까운 것이어서 사실상 사퇴 등을 선택하지 않고 법리다툼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지난 6.2지방선거때 후보단일화를 조건으로 금품거래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로 총 2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그러나 이미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유감스럽고 빨리 거취를 표명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계산없이 마구 발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 측에서도 곽노현 교육감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존재한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각에서는 확실한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언론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흘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사건 등에서도 문제가 됐던 행태라는 것이다.

검찰의 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나는 진보주의자들이 곽노현 교육감을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곽노현 교육감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보주의자들이 과연 그대로 두었겠는가?

하지만 나는 최소한 시민의 입장에서, 우리가 이번 사태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그리도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곽노현 교육감을 무턱대고 비난하기에 앞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늠해보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를 보자. 그들에 따르면 검찰이 의심하는 것은 당시 박명기 후보의 선거비용을 곽노현 교육감이 보전해주는 대가로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점인 것 같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부를 국가에서 보전해주고 10%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의 절반을 보전해주는데, 박명기 당시 후보는 기탁금 내고 후보등록 한 다음 중간에 사퇴했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비용을 곽노현 교육감 측이 보전해주기로 하고 단일화 협상을 한 것 아니냐는 것이 검찰의 추측이라는 것 같다.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는 법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켜서 진행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선거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 선거라면 정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갖고 쉽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겠지만 교육감, 교육위원의 경우는 법적으로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교육감의 경우는 2010년부터 국회의원과 똑같이 후원회를 열 수 있게 되어 좀 나아지긴 했지만 (교육위원은 지금도 후원회를 열 수 없다) 그 이전까지는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후원회조차 둘 수 없어 사실상 오로지 개인 돈과 사적으로 차용한 빚으로만 선거를 치러야 했다.

박명기 당시 후보의 경우 이미 여러 선거에 출마했었고 위에 언급한 것처럼 후보등록 후 중도사퇴를 했기 때문에 상당한 금액을 이미 지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후보단일화를 하는 경우 이 비용에 대한 논의를 따로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무리한 얘긴 아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보수언론의 보도에 등장한 곽노현 교육감의 '박명기 전 후보가 자살할까봐' 라는 문구가 그저 어이없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검찰이 상상하는 대로의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에 있어서의 제도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지금 필요한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것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이 펼쳐질 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함께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전히 기차는 멈추지 않고 달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중에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생각될만한 두 가지 요소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위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얘기로, 이 사건이 앞으로의 '야권연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거다.

보통 후보단일화는 예비후보를 등록하기 전이나 최소한 후보등록 전에는 마친다. 만약 후보등록 이후에 한 사람이 사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하게 되면 앞서 언급한 비용문제나 투표용지에 이름이 찍혀 나오는 문제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렬, 협상재개, 시민단체 중재안, 또다시 결렬 등의 난항을 겪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후보등록 후에 각 후보들 간의 결단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선거비용 얘길 안 하게 될 수 없는데,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 수사하는 것처럼 열심히 하면 이긴 쪽이 선거비용 보전해 준 사례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각 정치세력들이 후보단일화를 통한 선거연합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찰의 정치적 수사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것이 무엇을 겨냥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이것보다 좀 더 흥미진진한 음모론이다. 10월에 서울시교육감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선거 프레임은 '무상급식 again'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교육감과 서울시장이 둘 다 도덕성 시비로 그만뒀다면 비리 문제가 초점이 되겠지만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발생한 상황에서 교육감을 같이 다시 뽑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했듯이 정치적 중립에 대한 원칙의 문제로 한나라당 소속인 서울시장 후보는 '비리 교육감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교육감 후보는 '무상급식 중단 없이 시행 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선거가 이런 구도로 짜여 질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주민투표의 패배를 박근혜 전 대표가 협력하지 않은 것에서 찾는 친이계 일부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무상급식 이슈로 진행하지 않을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지원 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상황은 아주 명백해진다. 박근혜 전 대표 입장에서는 첫째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서울시장 선거를 지원하던지, 둘째 서울시장 선거를 아예 지원하지 말던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해도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행보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를 택할 경우 이번 주민투표 국면을 통해 잃어버린 보수층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대선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중간층을 잃을 수 있다. 후자를 택할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대권행보를 위해 무책임하게 처신하고 있다는 친이계의 공세가 한층 거세지고 강경 보수층의 지지 이반이 심각해질 수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보면 검찰의 절묘한 수가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왜 하필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직후인가? 주민투표 기획의 뒤에 청와대 관련 인사가 있다는 풍문을 겹쳐보면 이 사태와 관련한 가장 화끈한 음모론이 그려진다. 물론 확신하기에 시기상조인 음모론을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음모론을 도구적으로 이용해볼 필요는 있다. 10월에 보궐선거가 치뤄 질 경우 진보가 승리할 지 보수가 승리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박근혜 전 대표는 어떤 경우든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점만 짚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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