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MBC가 신입 기자 응시생들에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자를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 물어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오전 신입 공채 필기시험을 치른 MBC는 영상기자 직군 논제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업무상 위력 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어떻게 지칭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논제는 아래와 같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의 호칭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한쪽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피해자란 단어를 쓰면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하게 된다며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고소인으로 칭했다. 반대쪽에서는 기존 관행과 달리 피해호소인이라 쓰는 것 자체가 성범죄 사건에서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하고, 2차 피해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고소인과 피해자 중 어떤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를 논술하라. (제3의 적절한 호칭이 있다면 논리적 근거와 함께 제시해도 무방함)

앞서 피해자 호칭 논란이 일었을 때, 피해자 측과 여성계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해자의 존재를 축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피해자와 함께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 전화는 지난 7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를 “위력 성추행 피해자”라고 지칭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법에 명시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름으로 퇴행시켰다”고 말했다.

언론은 논란 직후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KBS는 7월 15일 “KBS성평등센터의 자문을 근거로 ‘피해자’로 용어를 통일한다”고 밝혔고, JTBC와 TV조선 등도 ‘피해자’라는 용어를 뉴스에서 사용했다. MBC는 이보다 앞선 7월 13일부터 <피해자 측, 영결식 끝난 뒤 기자회견…“진상 밝혀져야”> 등 ‘피해자’로 보도했다.

(사진=MBC)

해당 논제를 받아든 응시생들은 분노하고 있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건 2차 가해라는 지적이다. 언론준비생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아랑’에는 “애초에 이 문제가 피해자에 의해서 제기됐고 ‘그렇게 쓰지 말아달라’, ‘2차 가해다’라고 얘기했다. 발화인이 사과까지 했는데 이를 논제로 내놓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명백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에서 현재 진행중인 사건을 가져와 논제로 써먹는다? 수백 명의 응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를 두고 피해호소인인지 피해자인지를 가리는 글을 쓴다고 하면 끔찍하다”등의 글이 올라왔다. 일부는 사상검증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등장했다.

한 응시생은 미디어스에 “문제를 접하고 2차 가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피해호소인과 피해자라는 호칭이 대한 사회적 논란 있던 사안이지만 그 둘 중 어느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피해호소인이라는 호칭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적절한 호칭을 두고 어떤 것이 적절한지 고르라고 하냐 자체가 모순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MBC 관계자는 해당 문제를 내게 된 배경에 대해 “응시생들이 시사현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맥락을 읽는 능력을 보고자 함이었다”며 “조국 논란에 이어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현안 중 하나였고, 이미 공론화된 문제다.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자기 입장을 서술하는지 궁금했으며 평소 언어 사용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는지 묻고자 출제했다”고 말했다.

그는 ‘2차 가해’ 논란에 대해 “이를 찬반문제로 등치시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며 “문제 안에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2차 가해라고 명시해뒀다. 기자들은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다면 논리적이고 심층적으로 파악해 이를 전달해야지 문제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사건의 맥락을 잡아내고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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