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서울고등법원이 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에 내린 시정명령·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이원형 부장판사)는 11일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페이스북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는 “판결문 분석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가 KT 캐시서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전고지 없이 접속경로를 미국·홍콩 등으로 변경했다. 우회 접속으로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이용자들은 접속에 어려움을 겪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속도를 떨어뜨렸다고 판단해 2018년 3월 과징금 3억 9600만 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은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건 맞지만, 위법의 요소는 아니다”라며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페이스북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은 서울행정법원과 마찬가지로 시정명령·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이용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면서도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은 “페이스북은 국내 통신사와의 인터넷망 접속 관련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접속경로를 변경해 평균 응답속도를 지체시켰다”면서 “접속경로 변경은 이용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동영상 일부 콘텐츠를 이용할 때만 불편함을 느끼고, 게시물 작성이나 메시지 전송 등은 평상시처럼 했다”고 밝혔다.

고등법원은 “응답속도의 변동 평균값은 일반적으로 반영되는 지표 값과 다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이용자 이익 침해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사정만으로 현저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50에 대해서만 한 것을, 100에 대해서 한 것으로 판단하고 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방통위는 “판결문 분석 후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2심 재판부가 페이스북 행위를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 “'현저성'에 대해선 재판부가 피해를 입은 이용자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용자에 대한 차별이나 이익 침해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방통위 1심 재판 진행상황 (사진=연합뉴스)

이번 법정 다툼은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의 ‘상호접속 고시’ 개정안 시행으로 촉발됐다. 데이터 접속료는 데이터를 보내는 측이 받는 측에게 지불해야 한다. 2015년까지 국내 통신사들은 서로 간 데이터 이동량이 막대하다는 이유로 별도의 접속료를 청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등한 지위의 통신사라도 데이터 접속료를 정산해야 한다’는 상호접속 고시가 시행되면서 국내 통신사 간 데이터 전송비 정산이 시작됐다.

상호접속 고시 시행 전 페이스북은 KT에 캐시서버를 설치하고,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는 KT 캐시서버를 이용하고 있었다. 상호접속 고시가 시행되면서 캐시서버를 보유한 KT가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에게 전송비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KT는 페이스북에 접속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페이스북은 이를 거부하고 접속경로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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