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휴일이어서 내부 데스킹이 부족했다” (YTN)
“기자들이 자살 보도 관련 심의규정을 인식하지 못했다” (MBN)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은 소녀의 사생활을 침해했지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줬다” (TV조선)

YTN·TV조선·MBN은 정의기억연대 마포쉼터 소장 사망 당시 자택 열쇠구멍에 카메라를 들이대 내부를 촬영하고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의견진술에서 YTN·MBN 측은 ‘휴일 근무에 따른 데스킹 부족’, ‘기자들의 심의 규정 미숙지’가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TV조선 측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베트남전 네이팜탄 사진, 정전에 따른 블랙(송출 중단)과 비교했다. 방송통심의위 방송소위는 세 방송사에 대해 법정제재 주의를 결정했다.

6월 6일 정의기억연대 마포 쉼터 소장 손 모 씨가 사망하자 다수 방송사는 손 씨 자택을 촬영했다. 이 중 YTN·TV조선·MBN은 뜯겨 있는 열쇠구멍을 통해 자택 내부를 촬영했다. 방송 시간은 YTN은 26초, MBN 16초, TV조선 8초다. TV조선은 관련 장면을 흐림처리했지만, YTN·MBN은 자택 내부를 여과 없이 방송했다.

열쇠 구멍을 통해 소장 자택 내부를 보여주는 YTN(위), 열쇠 구멍에 손짓하는 MBN 기자(아래). 블러처리, 붉은색 원은 미디어스 편집 (사진=YTN·MBN 보도 화면 갈무리)

방통심의위 방송소위는 26일 열린 의견진술에서 방송 경위에 대해 물었다. TV조선 안석호 보도본부 부장은 “휴일이어서 데스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 부장은 “(데스킹이 없는) 그 와중에도 편집기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흐림처리를 했다”면서 “나 역시 첫 방송 이후 해당 장면을 사용금지 처리했다”고 밝혔다.

안석호 부장은 “열쇠구멍 안을 촬영한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현장 기자의 습관”이라고 해명했다. 안 부장은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없었고 다수 언론사 기자들이 핸드폰으로 비슷한 사진을 찍었다”면서 “영상기자는 현장에 보이는 모든 걸 찍는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안석호 부장은 현장기자의 열쇠구멍 촬영 행위를 베트남전 네이팜탄 소녀 사진과 비교해 강진숙 위원의 지적을 받았다.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는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 폭격에 화상입은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해당 사진은 베트남전 참상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안 부장은 “베트남전 당시 (AP통신은) 전라로 있던 10대 소녀가 뛰어가는 사진을 찍었다”면서 “그 소녀에게는 사생활 침해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진숙 위원은 “너무 나간 것 같다”면서 “전쟁 사건과 달리 마포 쉼터 소장은 범죄자·피의자가 아니다. 범죄의 단서를 찾고자 잘못된 접근을 한 것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란 걸 모르는가”라고 지적했다. 안 부장은 “책임은 인정한다”면서도 “방송을 하다 보면 정전이 발생해 블랙(송출 중단)되는 경우가 있다. 게이트키핑 여부를 떠나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네이팜탄 소녀' 사진 (사진=연합뉴스)

최은수 MBN 보도국 차장은 해당 장면 촬영 이유를 “기자들의 열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차장은 “특별한 의도는 없었고 열정 때문에 담겨선 안 될 장면이 나갔다”면서 “현장기자들이 심의 규정의 경각심을 인식하지 못했다. 무지해서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 최 차장은 “다른 언론사가 담지 않은 영상을 선제적으로 보도하자는 의욕이 앞섰다”면서 “내부적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YTN은 “휴일이어서 데스킹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장명호 보도국 영상에디터는 “자살 현장이 방송에 나가면 안 된다는 걸 숙지하지 못했다”면서 “의도는 없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직원들에게 주지시켰다”고 했다.

방송소위는 TV조선·MBN·YTN에 법정제재 주의를 결정했다. 허미숙 부위원장·강진숙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 의견을 냈다. 이소영·이상로 위원은 회의에 불참했다.

허미숙 부위원장은 “현장에 있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 역시 열쇠구멍 사진을 찍었지만 보도하지 않았다”면서 “TV조선·MBN·YTN은 사회적 책임을 지키지 않았고 망자·유가족에 대한 배려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허 부위원장은 “의견진술자들이 잘못을 인정해 다행이지만 자살보도 관련 심의 규정 위반이 꾸준하다”면서 “엄한 제재를 통해 주의 의무를 촉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강진숙 위원은 “자극적인 장면이었다”면서 “속보 경쟁의 폐해다. 자살자의 사생활은 살아있는 사람 만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상수 위원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 장면을 내보낸 방송사에게 행정지도 권고를 내린 바 있다”면서 “이번 안건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상수 위원은 “문 대통령 모친 시신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이번에는 기자가 열쇠구멍 속을 촬영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허 부위원장 지적에 “비슷한 성격인 것 같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기에 계도 차원에서 권고 의견을 낸다”며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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