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각 정치세력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야의 대결보다는 당 내부의 정파들끼리의 긴장관계다. 총선을 8개월 가량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하기 때문이다. 살려면 공천을 받아야 하고, 공천을 받기 위해선 당권에 개입해야 한다. 당연히 내부투쟁이 활발해지고 계파 간의 갈등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한나라당의 상황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 되고 당 중심의 당청관계가 정립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청와대의 입김이 강해지고 그간 청와대를 대놓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조용해진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는 한상대 검찰총장과,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잘 드러난다. 금방이라도 반란의 선봉에 설 것 같았던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들의 기세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조용해진 가운데 대통령은 여러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해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이 문제를 잘 생각해보기 위해 최근 반-박근혜 진영의 선봉에 서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행보를 생각해보자. 최근 이재오 특임장관은 독도를 주제로 한 이슈파이팅에 열중하고 있는데, 심지어 직접 전투경찰복과 총을 착용하고 독도경비대 체험을 할 정도였다. 이것은 한 나라의 국무위원이 행동한 것으로는 굉장히 파격적인데, 이러한 파격을 아무런 정치적 고려없이 연출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일용과 대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내용의 핵심으로 한일협정에 대한 문제제기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한일협정으로 얻은 차관이 당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에 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재오 특임장관이 반TK전선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당내 갈등에 대입해보면 결국 이재오 특임장관의 행보는 친박진영에 대항하기 위한 판 만들기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하여서는 이와 반대로 친박계의 암수가 들어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는데 그러한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친이계의 일부로 활동한 인사들의 상당수가 3당합당 당시의 구-민주계라는 사실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폭발력을 가지는 이유는 '3천억원' 이라는 비자금의 존재와 그 규모 때문인데, 이러한 폭로는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의 비자금은?' 이라는 의문으로 연결될 수 있고 바로 그렇다는 점을 최근 조선일보가 지적하기도 했다.

▲ 역대 대선 당선자들의 대선자금 규모에 대해 조선일보가 그린 그림

그렇다면 친-박근혜와 반-박근혜 진영이 크게 한 판 붙으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들의 이러한 '견제'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 아닌가 라는게 내 추측이다. 이 문제는 특히 정두언 의원을 위원장으로 구성한 특위에서 저축은행 국정조사가 유야무야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 중 삼화저축은행의 신삼길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리'의 네트워크에 친이/친박 구분할 것 없이 다함께 걸려있는 것 아니냐는 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이와 친박이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멱살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이것에 대한 민주당 우제창 의원의 폭로에서 홍준표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이것의 파괴력이 사실상 한나라당 전체를 휘말리게 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을 암시한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임명 강행은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파헤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으로 해석하면 폭탄이 터지는 경우 친박의 꿈은 한나라당과 함께 사실상 공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좋든 싫든 친-박근혜와 반-박근혜는 확전을 자제하고 최대한 대선까지 당 내부를 단속해서 청와대와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떠밀려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친이계 일부는 계속해서 반-박근혜 노선을 견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박근혜를 쓰러뜨리고 자신들이 전권을 잡겠다는 목적을 가진 총력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핵심은 공천이고 생존이다. 이를 위해서 테이블에 놓인 여러 카드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모양일 뿐이다.

▲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별관에서 2012년 대선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오세훈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대권 전략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세훈 시장이 경향적으로 친이계로 분류되고 대중적 지지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조건을 함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입장에서 최근의 상황은 사실상 '진퇴양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구청장과 시의회의 상당수를 민주당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생각대로 되지 않고, 이렇게 가다가는 사실상 '식물'이나 다름없는 서울시장으로 임기를 끝마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서울시장은 그만두고 대권으로 직행해 몸값을 부풀리려는 시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엄청난 비가 왔다. 나는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대권으로 가는 시나리오는 폐기됐다고 본다. 물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국가도 다스리지 못한다는 오래된 관념이 있다. 실제로 수해 이슈가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슈를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장 사퇴는 사실상 수해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확률이 크기 때문에 대권으로 갈 수 없는, 가더라도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이 조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남은 선택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하게 붙들어서 상황을 뒤집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최대한으로 도모할 수 있는 조건은 한나라당의 전면적인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고 그 과정으로서 대립하고 있는 친이와 친박이 '오세훈'을 구실로 해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 자체를 해소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주민투표 승리' 발언과 오세훈 시장의 '대선불출마'라는 수가 아닌가 싶다. 오세훈 시장의 대선불출마는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친박계에게 안도감을 주고 오세훈 시장에게 협력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준다. 최근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친박의 지지를 받은 이종구 의원이 당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짙어진다. 친이계의 경우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주민투표에 대한 공개적인 비토나 비판을 이야기 하기 어려워졌다. 소장파는 이 사이에 끼어서 독자적인 정치행보를 사실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도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결국 오세훈 시장이 의도한 상황으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직 그러한 예측을 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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