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서울신문 기자들이 11일 오후 기자총회를 열고 앞서 논란이 인 곽병찬 논설고문의 칼럼을 두고 논의한다.

류지영 서울신문 기자협회장은 10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곽병찬 논설고문이 사회적 합의와 맞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로 괜찮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 두 부분에 대해 기자총회를 열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총회에서 총론이 모이면 기자협회 서울신문지부의 입장으로 성명이 나올 예정이다.

서울신문 6일자 31면에 실린 곽병찬 논설고문의 칼럼

기자총회가 열리기 전이지만 “곽 고문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는 2차 가해, 폭력의 영역이기에 용인할 수 없다”는 게 편집국 내 전반적인 분위기다. 지난 6일 곽병찬 논설고문의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칼럼이 게재된 이후 서울신문 내부에서는 성명이 연달아 나왔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칼럼이 서울신문 지면에 실린 데 대한 반발이다.

칼럼은 소폭 수정된 채 지면에 실렸지만, 편집국 부국장단은 “해당 칼럼을 온라인에 게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서울신문 홈페이지에 해당 칼럼을 올리지 않았다. 당일 ‘곽병찬 칼럼에 이의 있다’는 사회부 기자의 글에 이어 다음 날에는 50기, 51기, 52기 기자들의 연대 성명이 나왔다.

막내 기수인 52기 기자들은 “곽 고문의 칼럼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성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더군다나 편집국에서 박원순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현장 기자들이 일관되게 견지한 ‘성추행 의혹 사건 진상 규명’,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금지’ 등 보도 스탠스와도 크게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50기, 51기, 52기 저연차 기자들은 안미현 편집국장과 문소영 논설실장, 고광헌 사장에게 칼럼이 실리게 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7일 자정, 문소영 논설실장은 “칼럼이 주장하는 바를 논설실장은 동조하지 않는다. 지난 5일 제작회의에서도 ‘곽병찬 칼럼 원고가 편집국의 취재방향이나 논설실의 사설 방향과는 맞지 않지만 싣기로 했다’는 인식을 밝혔다”는 입장문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문 실장은 칼럼을 실은 이유로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를 들었다. 문 실장은 “편집국의 반대를 이유로 칼럼을 몰고하는 것은 과거의 여러 사례를 고려할 때 서울신문에 ‘또 다른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논설실장은 사설과 외부원고에 대한 최종 게이트키퍼이지만 논설실장이라고 해도 수용할만한 칼럼만을 골라 게재하거나 대폭 수정하거나 ‘몰고’할 수 없다”며 “만약 논설실장에게 그런 역할이 허용된다면 ‘회사의 입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명칼럼들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며 사람에 따라 남용될 수 있으니 이를 방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다양한 오피니언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부적절하다”며 “서울신문에 편집국 보도 기조나 사설의 논조와 다른 기명칼럼도 적지 않은데 그때마다 톤을 조정하고 고친다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다르면 다른 데로 남겨두어야 공론장에서 숙고하고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설실장과 뒤이어 나온 편집국장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5일 오전 11시 제작회의에 대표발행인(사장), 심의실장, 수석부국장,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논설실장은 “곽병찬 칼럼 원고가 편집국의 취재방향이나 논설실의 사설 방향과 맞지 않지만 싣기로 했다”고 짧게 보고했고, 초판이 나간 뒤 편집국 차장 및 부국장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휴가 중이었던 편집국장은 5판이 나온 뒤 부국장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대체할 원고를 수배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편집국장은 사장, 제작이사, 논설실장에게 연락해 10판 수정본도 문제가 있으니 내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각각은 “원고를 다시 보겠다”, “얘기를 해보겠다”, “충분히 실을 만하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20판에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논설실장은 이 과정에서 사장의 의사를 물었으니 “몰고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아 문제 되는 문장을 일부 수정, 발행했다.

논설실장은 온라인에 칼럼이 송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 실장은 “명백히 논설실의 권한을 침해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해당 칼럼이 서울신문 인터넷에 걸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기명 칼럼은 쓴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며 사실관계의 오류를 걸러내는 수준을 벗어나 과도하게 게이트키핑을 적용하는 것은 ‘검열’이라고 주장했다.

8일 편집국 차장은 “사장께서는 언제까지 침묵하실 겁니까”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사실전달이 주목적인 기사와 달리 칼럼은 다양한 의견이 표명되는 장이지만 칼럼의 독자성은 보편적 가치의 틀을 벗어난다면 용인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인권과 사실관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며 “해당 칼럼의 문제는 이러한 기준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차장은 해당 칼럼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2차 가해를 막아야 한다는 인권 문제를 무시했고, 피해자답지 않다고 ‘공작’으로 몰아갔으며 피해자에게 의혹을 규명하라고 겁박했다고 했다. 차장은 “글이 아니라 피해자의 목을 내리치는 칼날”이라며 “이번 칼럼이 우리 지면에 나간 것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행위에 동참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안미현 편집국장은 같은 날 “표현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논설실장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곽 고문 칼럼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연결짓는 것은 오히려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 국장은 “칼럼을 내리고자 주장한 까닭은 이 칼럼이 미투사건 보도에 있어 서울신문 편집국과 논설실이 지향해온, 피해자 중심주의에 위반되고 심각한 2차 가해를 안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특히 칼럼에 실린 “신속한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 피해자의 핸드폰을 포렌식해라”와 “고소인의 진정성을 지키려면 기획의 가능성이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해명해야 한다” 등의 주장은 ‘심정적으로’ 의심스러우니 성폭력 피해 주장이 거짓이거나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온라인 미송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논설실장의 입장에 대해 “온라인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했고 논설실장도 이에 동의했으며, 편집인인 사장에게 최종 판단을 부탁했지만 이후 사장 별도 지시가 없어 홈페이지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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