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발표한 8·4 수도권 주택공급 대책이 서민 주거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민 주거안정은 저렴한 가격의 주택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것이 핵심인데, 일반분양과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등을 통한 공급책은 투기조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시민사회와 언론 등에서 곧바로 제기되는 것이다.

정부는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유휴부지를 활용과 공공재건축 등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해 최대 26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공분양 사전청약 6만호, 공급예정 물량 7만호, 신규택지 3.3만호,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한 2.4만호, 재개발·재건축 등 7만호 등이다. '공공참여형 고밀도재건축' 방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 참여를 전제로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안이다. 재건축 단지가 기부채납하면 용적률 최대 500%, 주택 층고제한 최대 50층까지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것이다. 그간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춰 온 정부 부동산 정책과 배치되는 이례적 공급확대책이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 부총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과거 강력한 부동한 종합대책에도 공급확대 대책이 집값 상승에 불을 지폈을 뿐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와 언론 일각에서는 투기조장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경향신문은 5일 사설 <서민 주거안정과 동떨어지고 조율도 안 된 주택공급안>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공급물량에 장기적으로는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시장 불안을 해소하려 한 정부의 노력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면서 "하지만 이번 계획은 물량 맞추기에 급급해 서민 주거안정성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당장 이번 대책의 핵심인 공공재건축부터 성공 여부가 의문시되고 있다"며 "공공재건축은 LH 등 공공기관의 참여로 장기임대주택과 무주택자, 신혼부부·청년들에게 공급하는 공공분양 물량을 확보하는 대신 재건축 시행자인 조합에는 규제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재개발 조합들의 호응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수익성을 우선 고려하는 재건축 조합이 기부채납에 임하려 하지 않을 경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 간 정책 엇박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의 층수제한 완화 정책에 서울시는 즉각 50층 아파트 재건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와 서울시 양측은 한발 씩 물러서 50층 완화가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환경 등을 고려한 재건축은 35층 이상 지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향신문은 "이런 중대 사안이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채 발표되었다니 황당하다"며 "이런 졸속과 혼선을 빚은 주택공급안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경향신문 8월 5일 사설 <서민 주거안정과 동떨어지고 조율도 안 된 주택공급안>

같은 날 한겨레는 사설 <예상 뛰어넘는 공급 확대, 집값 안정 전환점 되어야>에서 "정의당과 시민단체들은 '재건축 완화는 투기 수요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우려한다. 정부가 유의해야 할 대목"이라며 "자칫 사업 성과와 실효성에만 집착해 재건축조합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되지 않도록 공공 개발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서울 도심의 용적률과 층고 완화는 10여년 만의 일이다. 서울시가 추구해온 도시재생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고밀도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8·4 공급책', 투기 차단과 차질 없는 이행에 성패 달렸다>에서 "이번 대책은 어쨌든 대형 개발 호재다. 자칫 1,500조원이 넘는 시중 부동자금이 크게 움직이며 또 한 번의 투기판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틈새 투기’가 재연되면 현 정부 부동산대책은 회복 불가다. 시장 감시와 법제, 투기 세무조사 등을 총동원하는 강력한 투기 차단책이 즉각 가동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실련은 "공급확대는 투기조장대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실련은 4일 성명에서 "대책으로 발표된 26만호에 서민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은 일부에 불과하다. 70%는 과거처럼 판매용 아파트"라며 "지난 10년간 500만호의 새 주택이 공급됐지만, 260만호는 다주택자가 사재기했다. 당장 공급효과가 발생하는 효과적인 공급책은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700만 채를 시장에 내놓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참여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 2005년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강화, 신도시 조성 등의 내용이 담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6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정부 정책과 반대로 일부 강남 재건축단지 용적률을 완화하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강남 집값이 요동쳤다. 이후 정부는 ‘11·3 대책’, ‘11·15 대책’ 등 공급 확대 쪽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지만 집값은 계속 올랐다. 김대중 정부에서 강남 투기를 막겠다며 개발한 판교신도시는 오히려 주변 집값을 끌어올렸다.

경실련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 당시, 투기적 가수요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지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입장을 번복하여 공급 확대책을 주도하고, 엉터리 부동산통계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23번째 공급 확대책은 서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공기업, 건설업계와 함께 투기를 조장해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라고 질타했다.

참여연대는 같은날 논평에서 "투기의 진앙지라고 할 수 있는 재건축 사업 규제 완화 조치가 다시 한번 수도권 집값 상승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공급 확대 물량 중에서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민간분양 비율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공공임대 비중을 분양주택보다 훨씬 높게 정해야 하며, 민간 분양의 경우에도 분양가상한제를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정부가 주택 공급 물량 확대에 편중된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과잉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한 DSR(총부채상환비율) 전면 확대, 주거권 보호와 주거 안정을 위한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22번 오판 끝에 드디어 내놓은 아파트 공급 대책>에서 "이제라도 부동산 공급 대책으로 물꼬를 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