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보장하고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증액 상한율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전세 소멸론'을 강조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임차인이다", "4년 있다가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게 되는구나 싶다"는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발언도 화제다.

하지만 전세매물 감소와 가격상승이 금리, 부동산 가격 등의 요인으로 오랜기간 영향을 받아왔던 점, 이른바 '갭투자'의 도구로 활용되어 온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은 점 등 때문에 '임대차법으로 전세 씨가 마른다'는 주장은 왜곡·과장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겨레 8월 3일자 지면 갈무리

한겨레는 3일 기사<작년 12월부터 전세 기근… 중개업자 "임대차법 때문만은 아냐">에서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세가격 급등과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을 임대차 3법의 '부작용'으로 규정하면서, '세임자를 보호하는 법이 세입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며 "하지만 전세시장 불안에 따른 세입자 피해를 과장해 이를 '악법'으로 몰고 가는 것은 임대인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악의적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짚었다.

한겨레는 우선 4년으로 늘린 임대차 계약기간이 실제 효과가 크지 않은 소극적 법안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일각에서 임대인 피해를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세입자 평균 거주기간은 3.2년으로 시장에서는 이미 1회 계약갱신이 이뤄지고 있어 거주 기간이 0.8년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임대료 인상도 계약이 만료되는 4년 뒤에 인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 등에서는 오히려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계약기간 9년(3+3+3)' 방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횟수 제한 없는 계약갱신청구권 보장안 등이 입법 과정에서 더 심도있게 논의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에서는 이번 법 개정에 세입자 보증금 보호대책, 신규 임차인에 대한 임대료인상률상한제 등이 빠져 있어 임차인이 계약기간과 임대료를 다퉈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어 한겨레는 임대인들의 '전환 여력'을 꼬집었다. 한겨레는 "일각에서는 갭투자가 성행해온 서울 전세시장 특성상 월세 전환이 급속히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면서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서울의 주택 구매 절반(52.4%)이 갭투자였다. 강남4구의 경우 갭투자 비중이 72.7%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한겨레에서 "상당 기간 서울의 주택 구매는 세임자 전세보증금을 낀 갭투자였고, 갭투자를 할 때도 신용대출 등을 활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수억원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려면 그만큼의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지금 서울 주택시장에서 그럴 여력이 있는 임대인이 얼마나 될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지난달 31일 프레시안에 "다주택자 대부분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데,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것은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엄청난 부담"이라며 "전세보증금을 현금으로 들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주택자 상당수는 보유 주택 일부를 매각해 보증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겨레는 또 전세가격 폭등과 매물자김 현상은 지난해 12월부터 예고됐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일부 언론에서 최근 전세시장 불안의 주범으로 임대차 3법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는 임대차 3법의 영향이 아니라 집값 급등에 따라 예견된 결과였다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현재 '전세 씨가 마른다'는 제목으로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집중 보도하고 있는 일부 언론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강남권의 전세물량 소진과 전세가격 폭등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 바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등 보수·경제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특정지역 전세매물 감소와 가격 급등 소식을 전하며 그 원인으로 부동산 매매 가격 상승 등을 꼽은 바 있다. 전세의 특성상 저금리 역시 전세매물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한겨레는 "보유세 강화,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 등 다른 부동산 대책의 영향이 있는 상황에서 임대차 3법이 전세시장 불안을 가중시킨 부분이 있는 만큼 보완책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공공임대 확대와 LH를 통한 '공적 전세' 모델 등을 제시했다.

한편, 윤 의원 연설과 관련해 '이상한 억양', '마르크스 공산주의' 등의 반응을 보인 여야에 대해 합리적 논쟁을 저해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눈을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 없이 조리 있게 말을 하는 건 그쪽(통합당)에서 귀한 사례"라고 평가했고,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번 부동산 입법에 "마르크스식 공산주의"라며 '1가구 1주택' 주장을 '공산주의'에 빗댔다.

한겨레 김수현 경제팀장은 이날 칼럼 <'착한 정책의 역설' 피하려면>에서 "실망스러운 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다. 임대인 절대 우위였던 임대차 시장에서 임차인의 권리를 찾고, 전월셋값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에서 통과시킨 법안이 아니던가"라며 "논리와 팩트로 당당하게 논쟁에 나서 여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터인데 똑 떨어지는 반응이 없다. 고작 발 빠르게 나온 반격이 박범계 의원의 SNS 글인데,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비꼬다가 되레 내로남불·지역폄하 논란만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일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려 주 원내대표를 향해 "윤희숙이 벌어놓은 돈, 결국 주호영이 다 까먹네"라며 "이념선동을 나가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내세울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사실의 요란한 고백"이라고 총평했다.

한국일보는 3일 사설 <윤희숙 연설만 돋보인 무기력, 무대책 통합당>에서 "부동산 정책도 정부 여당을 향해 '무능하다'고 비난하기 바빴지 국민의 공감을 살 대안을 제시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최근 발표한 통합당 부동산 대책을 보면 재개발, 재건축을 통한 공급 확대와 세제·금융 규제 완화가 중심"이라며 "세제 강화, 공공주택 확대로도 투기심리를 잡을까말까 한데 반대로 해서 무슨 효과를 보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러니 부동산 부자라는 비아냥거림만 확산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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