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IPTV 1위 사업자 KT가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고 다음달 3일부터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를 비롯 국내 IPTV 3사 중 2개사가 넷플릭스를 공급하게 됐다.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완화 요구와 이를 수용한 정부정책 방향이 국내 미디어산업 경쟁력 강화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그간 국내에서는 해외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사업자에 맞서 국내 OTT 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국내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기업의 콘텐츠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 있고, 문화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부 정책 역시 국내 OTT 플랫폼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입김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사진=KT)

올레tv 이용자는 월 9500원, 1만2000원, 1만4500원 중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해 추가 결제하면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된다. 2019년 기준 올레tv 가입자는 약 740만명이다. LG유플러스는 약 440만명 수준이다. 전체 유료방송가입자의 약 35%가 넷플릭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KT의 넷플릭스 제휴는 LG유플러스와는 달리 망이용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조항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회는 5월 넷플릭스 등 콘텐츠사업자의 서비스로 발생한 트래픽이 통신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한 바 있다.

그간 SK텔레콤과 함께 LG유플러스의 넷플릭스 제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KT는 LG유플러스와의 가입자 유치 등 경쟁에서 넷플릭스의 효과를 체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KT는 자체 OTT인 '시즌'을 운영하고 있지만 콘텐츠 경쟁력 측면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김훈배 KT 커스터머(Customer) 신사업본부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ICT 정책간담회에서 "보통 현장에서 고객을 모을 때 LG대리점을 가면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경쟁상황"이라며 "저희가 시즌을 내놨지만 웨이브나 티빙 손을 잡을까 고민 중인 게 사실이다. 이런 고민이 내부에서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본부장은 "해외에서 OTT가 들어와 경쟁이 심화되면 이용자들이 3~4만원 내고 다 볼까? 혼돈의 시기를 거치고 나면 과거 경험상 평준화될 것"이라며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악영향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OTT 산업이 넷플릭스를 보고 가는 측면이 있고, 한국은 삼성, 멜론, 지니뮤직 등의 사례처럼 경쟁하며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OTT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 산업의 자생력이 한국 콘텐츠 소비를 바탕으로 상승해 결국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30일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조승래, 한준호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ICT 정책 간담회. (사진=미디어스)

이 같은 전망은 여타 국내 OTT 사업자들의 시각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 자리에서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정책기획실장은 "미국발 글로벌 OTT 공세와 대한민국 미디어들의 위기가 한국 영토 안에서의 전선"이라며 "글로벌 OTT들이 외세침입에 대비하지 못한 레거시미디어나 토종OTT들 두들겨 때리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미디어 주권을 상실할 것"이라며 "L통신사가 넷플릭스 제휴를 한 것은 여우를 잡으려고 호랑이를 들인 것이다. K통신사도 따라가려 한다. 지상파, 유료방송, OTT 등 국내 모든 미디어 산업이 위기인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주요 국내 OTT 사업자들이 전반적인 미디어 산업 규제 완화 방향의 국내·외 역차별 규제 해소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유럽연합의 이른바 '넷플릭스 쿼터제', 디지털세 부과 등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강신범 중앙대 겸임교수는 "국내 넷플릭스 오리지널 비율이 10%가 안되지만 넷플릭스가 10년 이상 정착한 국가들을 보면 오리지널 비율이 50%를 넘는다"며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고찰해내지 못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다. 지난 4년동안 망사용료, 콘텐츠 세금 등 동등한 경쟁환경이었는지 의문이고 주무부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제작비 한계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로 가는 것은 자연러스운 현상"이라며 "구조적 고찰 없이 외산업체가 세금 안내고 수익 싹쓸이해간다는 의견은 제작사 입장에서 넌센스"라고 말했다.

이상원 경희대 교수는 "규제는 공익을 위한 것인데,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혐오콘텐츠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지만 우리의 미디어시장이 살아야 한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공익도 생각해야 한다"며 "규제도 타이밍이 있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다. 규제를 유보하고 진흥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국내 사업자 경쟁력 강화는 정부 정책만으로 다할 수 없는 일"이라며 기업 주도적인 경쟁력 강화와 조력자로서의 정부 역할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OTT의 실시간 방송에 대한 규제논의에 대해 이 교수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국내 OTT의 차별화포인트인데, 규제를 해버리면 대체 무엇으로 경쟁하나"라며 "돈으로 할 것인가 정부가 다 도와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같은 사업자·전문가 논의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은 "정책과 서비스는 구분을 해달라"며 "서비스 관점이 섞여 논의가 이뤄지게 되면 정책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한 의원은 "미디어 생태계에서 OTT가 어디 위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책적 측면에서 큰 틀로 OTT를 담고, 서비스적인 것들은 뒤로 빼야한다"며 "OTT 정의를 해소하고 나면 정책적으로 가지고 갈 것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과방위 민주당 간사 조승래 의원은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OTT라는 건 형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일 뿐"이라며 "국회 제도화 방향은 콘텐츠 육성과 소비자 입장에서 변화된 미디어를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것이다. 이 과정에 OTT라는 고민 요소가 포함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번 KT의 넷플릭스 제휴는 정부가 지난달 국내 미디어산업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료방송 등 방송통신분야 플랫폼 규제완화와 1인 미디어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발전방안을 내놨지만 이번 제휴와 같은 시장경쟁 상황은 '한국판 넷플릭스 5개'를 목표치로 설정한 정부정책 방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