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국, 뉴질랜드 두 정상이 나눈 통화에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가 거론되면서 외교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2017년 외교부에서 성비위 사건 근절을 위해 무관용 원칙으로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8일 오후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재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의 통화에서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 현지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2017년 발생한 사건을 두고 외교부는 ‘감봉 1개월’ 징계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정상 간 통화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상황이다.

뉴질랜드 '뉴스허브'의 관련 보도 장면 (사진=Conor Whitten, Newshub)

앞서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는 2017년 말 한국 외교관 A씨가 주뉴질랜드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남자 직원을 성추행했지만 한국 정부의 비협조로 뉴질랜드 경찰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이 문제가 제기된 이후 2018년 뉴질랜드를 떠났으며, 현재 필리핀 주재 대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 중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법원이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뉴질랜드 외교부가 한국 정부에 조사 협조를 요청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30일 KBS<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외교부가 자체 조사로 감봉 1개월의 징계를 했다는 사실만 알려졌는데 뉴질랜드 피해자가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 뉴질랜드 법원에서 체포영장까지 발부한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 변호사는 외교부가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에서 드러난 뉴질랜드 피해자 측의 주장과 외교관 A씨의 해명 사이에 차이가 상당해 보이는 상황에서, ‘감봉 1개월’ 징계가 적당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어 징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부터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총영사 A씨에게 성추행 사건 ‘면책특권’은 적용되지 않는다. 서 변호사는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의 신분상 안전 보장을 위해 형사 소송 등을 면제받는 ‘면책특권’이 주어진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는 면책특권 대상이지만 지금은 다른 아시아 국가 영사관에 가 있으니 면책특권 문제는 크게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우리나라와 뉴질랜드 사이에 범죄인 인도 협약이 체결돼 있어 뉴질랜드에서 범죄인 인도 협조 요청을 해온다면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A씨가 자발적으로 뉴질랜드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체포영장이 강제적으로 발휘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외교관들의 반복된 성 비위 사건과 관련해 서 변호사는 “외교관의 행동은 단순 개인 일탈 행위가 아닌, 국격과 국익과 연관된다. 외교부에서는 2017년 ‘성비위 사건 해결을 위한 원스트라이크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성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고 문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여러 문제가 얽혀있겠지만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고위공직자들의 기강해이가 원인이라 본다”며 “이런 일이 불거질 때마다 외교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외교부의 해외 공관에 대한 통제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 공관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인식 개선”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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