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미투운동·내부 비리 고발을 막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최근 미투운동과 맞물려 있다”면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고소당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을 피하기 위해선 법원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표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문제는 미투운동과 맞물려있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SNS 등 온라인에 가해자 신상과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일반인은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와 관련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대한변호사협회·사단법인 오픈넷은 28일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손지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사유를 넓히고 친고죄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단은 오래된 일”이라면서 “성폭력 가해자가 폭로를 문제 삼아 고발하면 2차 가해가 된다. 또 권력자의 부정행위 내부고발, 언론 실명 보도도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 변호사는 “예컨대 언론이 의료사고 발생 병원 이름을 보도로 공개하면 소송에 걸릴 우려가 있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익명 보도가 일상화됐다. 이는 일반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변호사는 형법 310조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를 현행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에서 “진실한 사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오로지’라는 단어를 삭제해 '공공의 이익' 범위를 넓히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처벌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손지원 변호사는 형법에서 ‘사실’을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로 바꾸길 권고했다. 성적 취향·전과 등 내밀한 개인정보 폭로를 막으려는 조치다. 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는 죄)에서 친고죄로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 “현재 사건과는 관계없는 제3자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발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독일·일본 등 국가는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규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 있다”면서 “당시 변호사 절반 정도가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법 개정에서 가장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법조인 절반이 개정 필요성을 피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한다면 미투 및 내부고발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폭로자는 수사기관에 불려가는 것 자체로 위축이 된다”고 말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형법은 개인의 명예보호를 우선시한다”면서 “공익성·공연성 기준이 모호해 법적 예견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 방향>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민주당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와 지지자들이 고소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성폭력 피해자의 입을 막는 법”이라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수진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개정안을 반드시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 방향> 토론회는 28일 오전 9시 40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수진 의원, 대한변호사협회, 오픈넷이 공동주최했으며 발제자는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다. 토론자는 김한균 변호사,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장철준 단국대 교수, 정성민 사법정책연구원 판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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