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악의적인 조롱에 가담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은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더니 결국 수사기관의 담을 넘어 여론전의 한가운데로 튀어나왔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다.

24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 대해 이동재 전 채널A기자에 대한 수사 및 기소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수사팀의 동력 상실은 불가피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검찰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무리한 기소는 피해야 한다. 한동훈 검사장 역시 수사에 협조해 논란을 끝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광풍이 어쨌다는 둥 멋진 말로 눙쳐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이런 조건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일부 정치권은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기 위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 권고는 수사팀이 이른바 ‘부산 녹취록’ 이외의 증거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인 걸로 추정된다. 해당 녹취록을 보면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기자들은 정권이 권력에 손해를 입히는 수사를 막고 있으며 신라젠 사건 역시 수사를 하다 보면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걸로 보인다. 한동훈 검사장이 신라젠 수사를 얘기하다 말고 느닷없이 이 정권 사람들은 잘못을 해도 뻔뻔한 태도여서 문제라는 취지의 반응을 한 게 그 예다. 다만 이것만 가지고는 양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모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특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대상으로 범행을 모의했다는 사건의 기본 구도는 이 녹취록의 대화를 통해 뒷받침 되지 않는다.

따라서 녹취록에 등장한 상황 이후 양쪽이 무슨 대화를 했고 그게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이철 씨에 대한 채널A 취재팀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주고 받은 대화 등으로 볼 때 채널A 취재팀과 한동훈 검사장과의 추가 접촉 가능성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 내용에 따라 앞서 녹취록의 대화는 ‘공모’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이동재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측이 주장하는 대로 ‘덕담’이 될 수도 있다.

이 대목이 핵심인데, 일반적 상황이라면 수사심의위에 핵심 물증을 제출하지 못한 수사팀의 수사의지나 능력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대응이 이런 평가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는 수사팀이 지난 4월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심상찮은 대응을 해왔다. 당시 언론은 MBC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를 ‘부실 영장 청구’에서 찾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황당해했다”고 보도했다. MBC가 신라젠 사건에 최경환 전 부총리도 연루됐다고 보도한 내용 등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나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은 본질적으로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사실인지 여부를 가려야 하는 사건이고 최경환 전 부총리의 고소 사건은 MBC 보도의 진실성과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 게 핵심이다. MBC가 이른바 ‘검언유착’ 취재 과정에서 불법촬영을 했다는 건도 마찬가지다. 보도과정에서의 위법성 문제이지 검찰과의 유착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검찰총장은 “비례원칙과 형평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을 지시했다. 비례원칙은 그렇다 쳐도 ‘형평’을 언급한 것은 ‘검언유착’과 MBC 보도 진실성 사이의 ‘공통분모’가 본질이라고 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두 사건의 접점은 이철 씨 대리인을 자처하는 지 모 씨인데 ‘제보자X’라는 유아적 명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검찰 수뇌부는 이미 이 시점에 ‘정치적 악의를 가진 사기꾼에 언론이 휘둘린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예단을 가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검 지휘부는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 거부와 무리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등을 강행했다. 이것은 최소한 조직 방어 논리이고 나아가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 구하기’라는 비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행태이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는 것은 죄가 있고 없고를 밝혀낸다는 것이다. 한동훈 검사장에게 죄가 없다면 그 사실을 밝혀내면 되고 이 과정에서 수사팀이 무리한 일을 했다면 검찰 수뇌부가 그 결과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그러나 수사 초기부터 이런 식이었으므로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황당한 사태는 예고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이런 사실 때문에 수사지휘권 발동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과거 논란이 된 수사지휘권 발동은 대개 검찰의 수사를 무력화시킨 사례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반대였다. 수사지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수사팀의 독립적 수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는 ‘하명수사’라고 하지만 고위 검사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 ‘없는 얘기’가 과연 나오겠는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 13일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아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까지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속행이 불가피한 이유다. 이제 남은 문제를 보자. MBC 최초 보도의 신뢰성을 문제 삼는 지적에 대해선 취재윤리 차원의 점검을 MBC 스스로가 해봐야 한다. ‘제보자X’ 지 모 씨가 과거 검찰 수사에 부당하게 동원된 ‘죄수’ 출신이었다는 점이 뉴스타파 보도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었다는 점에서, MBC가 취재원으로서 신뢰를 가진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 모 씨를 동원해 ‘함정취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한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도의 문제를 얘기하자면 최근 ‘KBS 오보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KBS가 이동재 전 기자 구속영장 발부 직후 배경을 전한 보도에 대해 조선일보는 서울중앙지검 핵심 간부가 오염된 정보를 유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KBS판 ‘검언유착’이라는 것이다.

하루만에 진위가 확인될 오보를 검찰 간부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유도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KBS 보도 내용에 있는 선거 영향을 목적으로 한 공모설 등은 정치권 일부가 제기한 바 있는 내용이다.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잘못된 내용의 녹취록이 인터넷상에 유포되기도 했다. 이런 경로를 통해 정치적 편향이 들어간 취재 내용이 보도에 반영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조선일보 등의 보도대로 검찰 간부가 소스라고 하면 ‘배달사고’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인용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발설한 내용이 잘못 인용된 경우다.

어떤 경우든 수사팀에 사실 확인을 시도하고 답변을 받았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과거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관련 KBS 보도 문제를 연상하게 된다. 당시는 언론이 검찰에 사실확인을 요구하는 것까지 ‘피의사실 유포’로 간주되었다. 이때 경험에 의한 자기검열이 취재와 데스킹의 약화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수사심위위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기소대배심이나 일본 검찰심사회와 같은 방식으로 시민통제의 강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모델은 검찰 불기소처분의 정당성을 다루되 결정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어서 판단 근거도 없이 수사 중단을 권고한 지금의 논란에 꼭 들어 맞는 대안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모델은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시민이 제한하는 게 핵심인데 오히려 정치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함께 봐야한다. 백인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거나 오히려 검사의 기소를 정당화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그 예다.

물론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시민적 견제의 모델은 강화돼야 한다. 그런데 대중이 관료조직의 결정을 직접 통제하는 모델은 그 형식의 실 내용인 ‘정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결국 핵심은 수사심의위라는 형식이 아니라 검찰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이라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가 정치적 개입을 의심하고, 일선 수사팀이 다시 검찰 수뇌부의 부당한 개입을 의심하며 반목하고 갈등하는 사태의 시작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이다. ‘검찰의 불복을 용인해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맥락이었을, 대통령의 그 순간의 선택이 지난 1년간 소모적 논란의 발단이다. 이 점을 권력이 직시하지 않으면 어떤 해결책도 작동하지 않고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각자 자기 정파에 유리한 방식대로 해석하고 주장하는 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돼버린 지금의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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