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우리나라 가족 드라마에는 일종의 전형이 있다.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 경제적이거나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거나 하는 '위기' 상황에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위기를 기회로 다시 뭉친다. 얼굴 붉히며 싸웠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을 모아 가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가족의 갈등은 어느 틈에 얼음이 녹듯 풀어지고 가족들은 함께 웃으며 그래도 '가족이 최고여~’ 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만으로 그간 가족 간에 내재돼 있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 역시 가족이 행복하게 함께 웃으며 16회의 막을 내렸다. 그런 면에서는 여느 가족 드라마의 엔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웃음에 이르는 과정의 해법은 그간 우리나라 드라마가 추구했던 방식과 다르다. 그간 가족 드라마와 달리, <가족입니다>는 단호하게 말한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제대로 서야, 개개인이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먼저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에 방점이 찍힌다.

엄마가 떠났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15회 마지막 장면, 엄마 진숙 씨(원미경 분)는 가족들을 불러모은다. 저녁 시간, 예전 같으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엄마표 음식' 한 끼를 챙겨 먹이느라 애썼을 엄마가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고 오라 말한다. 한 명씩 찾아오는 은주(추자현 분), 은희(한예리 분), 지우(신재하 분), 세 명의 자식들을 앉혀놓고 엄마는 그간 쌓인 감정을 폭발한다.

은희가 애인과 헤어지고 언니를 찾아갔을 때 언니가 날린 '팩폭' 때문에 무려 5년 동안이나 언니와 '의절' 아닌 의절을 했을 때도, 은주가 이혼했을 때도, 그리고 이제 막내 지우가 일언반구 말도 없이 집을 나갔을 때도 그곳에 엄마, 아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마다 엄마의 가슴은 미어졌지만,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자식들은 엄마 아빠에게 의논 한마디 없이 늘 일방적으로 자신의 일을 결정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묻는다. '너희에게 가족은 뭐니?'라고.

엄마가 이렇게 그간의 설움을 폭발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막내는 대번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막내에게 아버지는 당장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은주도, 은희도 자신들에게 서운함이 켜켜이 쌓인 엄마의 마음을 풀고자 애쓴다.

이 '일반적인 가족들의 노력'이라는 해법으로 여느 가족 드라마가 가는 '해피엔딩'의 길을 걸어가는가 싶었는데, <가족입니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엄마가 떠난 것이다. 졸혼에서 한 발 더 성큼, 엄마가 가방을 싸 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1년여, 엄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버텨내기 위해 자신을 버렸던 시간을 스스로 치유한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정처 없이 떠나고 싶던 그 마음을 실천한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모두가 집을 떠났었다. 결혼 혹은 독립을 하거나, 막내는 가족이라는 부담스러움을 피해, 그리고 아버지 상식 씨는 졸혼하겠다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해 집을 나섰었다. 모두가 떠났을 때도 엄마는 집을, 가족을 지켰다. 그런 엄마가 이제 떠났다.

은주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상식 씨와의 결혼,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변해버린 상식 씨를 견디며 아이들을 품고 버텨냈던 엄마. 그 시간은 결국 엄마에게 '졸혼'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결정하도록 했다. <가족입니다>는 졸혼에 이르기까지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엄마에게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준다. 가족들로부터의 위로 대신 이제 엄마 스스로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서는 것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가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웠던 엄마가 스스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엄마가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자신을 발길 닫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집'을 지킨다.

엄마만이 아니다. 사라져 버리려던 막내는 그 이유를 큰누나처럼 혹은 작은누나처럼, 누나들에 휩쓸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지 스스로 물음을 던졌던 막내 지우는 비록 사기에 휘말렸지만 '가족'을 떠나 온전히 '자신'만으로 서보려고 했다.

따로 또 같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지나왔던 시간 동안 열등감으로 인해 가족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고 일관했던 아버지가 회개하며 찾아온 엄마와 아빠의 '해빙 모드'.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섣부르게 '졸혼'을 뒤엎지 않는다. 졸혼을 해도 아이들의 부모라는 점에서는 '세트'라는 사실에 공감했지만, 아버지가 다시 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따고, 엄마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서로가 당당한 사람으로 서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다. ‘우리는 남이다’라는 원심력으로부터 가족이라는 구심력의 출발점이 마련된다.

우리 사회는 늘 공동체라는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융해시키는 것을 우선하는 시절을 지내왔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 이제 더는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 낼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시대, 이제 가족도 변해야 한다고 <가족입니다>는 말한다.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었지만 '졸혼'을 선택한 엄마를 존중한다. 평생 부부로 살면서 하지 않았던 '존중'. 그로 인해 나뭇등걸처럼 딱딱해진 부부 관계의 굳은살이 조금씩 풀어진다. 시작은 연민이었다. 어느 틈에 늙고 병들어 버린 배우자에 대한 연민. 하지만 여느 드라마들이 '연민'으로 퉁 쳐버린 노년의 삶을 <가족입니다>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연민을 바탕으로 한 '존중'으로 끌어 올린다. 1년여를 집을 떠나 떠도는 아내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아버지의 기다림에, 엄마는 부부 여행으로 응답한다. 나이 든 부부가 서로가 불쌍해서 함께 산다는 흔한 '화해'를 넘어, 나이가 들어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결론을 내린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은주의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서먹해졌던 삼남매는 끈끈한 핏줄 대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연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은주와 은희 자매는 은주가 홀로 감당하기 힘든 이혼 과정에서 은희의 한결같은 따스함으로 경계를 풀기 시작한다. 거기에 본인은 비난이 아니라 정당한 지적이라고 하지만 늘 동생들에게는 가차 없이만 느껴졌던 은주의 '거리감'은 오랜 시간 홀로 감내했던 이질감의 벽을 허물자 그 속에 담긴 '진심'의 무게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아무리 어려운 시간을 곁에 있어 줄 수 있어도 각자 삶의 과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듯이, 세 남매 각자의 몫이다. 은주의 이혼, 은희의 복잡했던 연애사와 일, 그리고 지우의 도발적인 가출 등 세 남매는 때론 힘이 되어주고, 달려가 줄 수는 있지만 거기까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각자도생해야 하는 삶에서 가족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각자도생의 과제가 '가족'의 해체는 아니라고 드라마는 힘을 주어 말한다. 가슴 속에 앙금이 남은 채 졸혼을 한 어머니는 행복했을까? 남편 태형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리감으로 시달리던 은주가 외려 이혼을 한 후 전남편 태형과 편하게 대화하고 웃을 수 있듯이, 서로가 온전히 스스로 지켜낸 자존에서부터 관계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어머니를 활짝 웃으며 반길 수 있는 각자의 건강함이 모여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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