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고소한 피해자의 호칭을 놓고 정치권 등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계에서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가 피해자 증언을 일방적 주장으로 축소시키는 표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KBS 등 언론은 어제(15일)부터 뉴스에서 '피해자'란 용어를 사용했다.

서울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단어를 썼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호소 직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위로를 전한다”며 “가능한 모든 조치를 통해 피해호소 직원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은 “피해 고소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피해자’와 ‘피해 호소인’을 섞어 사용했다. 이밖에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 민주당 여성의원들과 여성가족부 등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며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다.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고 공개한 비밀대화방 초대문자 7월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반면 여성단체 측은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 전화는 13일 기자회견에서 A씨를 “위력 성추행 피해자”라고 지칭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14일 낸 ‘언론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성명에서 “피해자의 호소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피해자'라고 적시했다.

기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KBS는 16일 <뉴스9>에서 “KBS 성평등센터의 자문을 근거로 ‘피해자’로 용어를 통일한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법률적 정의를 떠나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폭넓은 합의가 현재 공동체에 있다고 볼 수 있고, 과거 여러 사례 등을 봤을 때 피해자라는 호칭을 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JTBC, TV조선 등도 같은 날 ‘피해자’라는 용어를 뉴스에서 사용했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 등에서는 ‘고소인’이라고 지칭하면 여론의 반발이 심할 것 같으니 ‘피해자’가 들어간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며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피해호소인을 사용하는 것 같다. 앞서 총선 영입 인재 원종건 씨 역시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고소인’이나 ‘피해 호소인’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여성계에서는 피해자의 증언을 ‘일방적인 주장’으로 축소하는 판단이 들어간 용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된 박 시장이 사망해 경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한 가운데, 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공존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서울시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작동하겠다며 ’피해호소인‘이라 지칭하는 것을 봤다.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않는 조직에서 제대로된 진상조사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는 서울시 내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피해자는 장기간 동안 피해를 봤고 여러 번 조직 내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네가 오인한 것이다‘, ’그런 피해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부정당하고 서울시는 이에 맞는 절차를 진행해주지 않았다”며 “진술이나 증거를 보면 피해를 당한 것이 상당한 신뢰성이 있어 보이는데 서울시가 이런 입장이니 호소하지 못한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피해를 받아주지 않고, 피해자라 지칭도 하지 않는 조직에서 진상조사를 열고 피해자는 여기에 다시 불려가게 된 상황”이라며 “피해자가 있는데 피해자라고 부르지도 않으면서 같은 조직에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또 다른 박탈감 같은 것을 느꼈을 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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