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90.9%. 무슨 숫자일까? 2018년도 기준 신문기자 중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사람의 비율이다(2019 한국언론연감 자료 인용). 60.1%. 이건 또 무슨 숫자일까? 2016년도 2월 기준 방송기자 중 ‘SKY’를 졸업한 사람의 비율이다. 방송기자연합회에서 2016년 초 KBS‧MBC‧SBS‧YTN 기자 1,2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80.6%. 마지막 숫자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일보가 채용한 신입기자 232명 중 ‘SKY’를 졸업한 사람의 비율이다. 서울대 졸업자만 추리면 47%라는 숫자가 나온다. 미디어오늘에서 2018년 조사한 결과다.(2018년 7월 2일, “조선일보 입사기자 2명 중 1명은 서울대 출신”)

꼭 통계자료를 인용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도 아니다. 기자들은 대체로 고학력자다.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이 사실이 하나의 편향을 만든다. 청년이라고 인용되지만 실은 대부분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의 입장만 반영된 기사들이 그렇다. 물론 단지 기자들이 고학력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충실한 취재와 노력이 있다면 고학력이 아닌 청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발굴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자신이 살아온 세계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추지 못했거나, 또는 갖추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역시 새롭지 않은 사실이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청년 좌담회’니 ‘청년 릴레이 인터뷰’라든지 하는 기획기사가 이따금 나오지만, 취재원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도하는 심층분석 기사들도 곧잘 대학생들의 어려움을 청년의 어려움으로 대표시킨다.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에 관한 기사는 별도의 꼬리표를 달고 나온다. ‘지방대학생의 목소리’, ‘특성화고 졸업생 현장 르포’와 같이. 청년이라는 대표성은 인서울 4년제 대학생들이 독식하고, 나머지 잔여물을 나눠 갖는 모양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에서도 언론들은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해당 논란이 다시 한 번 ‘공정성’ 문제를 끄집어내면서다. 공정성이 화두가 되자 모처럼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청취하겠다는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에서 그렇다. 기사들은 대체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공정하지 않다고 ‘분노’하는 청년 목소리들을 담았다. 그런데 천천히 취재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바로 보인다. 대부분 대학생들이고, 대체로 인서울 명문대생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일경제의 7월 6일자 기사(“2030세대 "아무리 뛰어도 우리앞엔 기울어진 운동장"”)다. 조국 전 장관 사태‧부동산 논란‧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 등을 계기로 가시화된 청년들의 ‘분노’를 인터뷰로 풀어냈다. 이 기사에는 정당 관계자와 공사 재직자를 제외하면 4명의 청년 인터뷰이가 나오는데, 모두 소위 명문대(서울대‧고려대‧한양대) 출신이다. 기사는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청년들이 “'공정'과 '정의'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권도 비슷하다. 미래통합당이 6월 29일 주최한 ‘인국공 성토대회’에는 모두 세 명의 청년이 발언자로 나섰는데, 익명을 자처한 한 사람을 제외하면 역시 모두 소위 명문대(연세대‧홍익대)를 나왔다. 그리고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 적었다.

이렇듯 명문대 출신들의 목소리만 담아내는데 청년들의 여론을 제대로 비출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좋은 직장’을 꿈꿀 수 있는 청년들은 누구인가?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누구인가?

좋은 직장을 꿈꿀 수 있는 청년들은 누구인가? 2019년에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업준비생 927명을 대상으로 ‘목표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의 62.2%가 공기업‧대기업‧외국계기업 취업을 희망한다고 답한 반면, 고졸자는 31.3%에 그쳤다. ‘취업만 된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답한 비율도 4년제 대졸자는 20%가 채 안 된 반면 고졸자는 46%에 육박했다.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누구인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5년에 노동자 474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의 23%가 고졸이거나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비정규직 중 대졸자의 비율은 8.9%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기사에서 고졸 청년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기자들이 왜 이러는가. 몇 가지 가설이 있다. 물론 첫 번째는 정치적 의도다. 특히 보수언론에서 이런 경향이 자주 나타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 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과 관련해 가장 반발하는 것이 바로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인서울 명문대생이고, 이들의 목소리를 청년으로 대표시켜 담아내면 기사는 자연히 비판적 논조를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는 대부분 대졸자인 기자들의 주변 인맥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청년 인터뷰이를 구해야 하는데, 가장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주변 사람을 통해 섭외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도 대부분 대졸자이고, 그들의 주변 사람도 역시 대졸자가 대부분이다. 인맥을 통해 구하지 않고 직접 거리에서 인터뷰이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청년들이 많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대학가’를 찾아가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인터뷰이 대다수가 대학생 청년으로 채워진다.

물론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청년세대 10명 중 7명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다. 대졸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청년 인터뷰이 대부분이 대학생인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 논란의 한 축이 비정규직 문제이고, 앞서 살펴봤듯 비정규직 다수가 ‘인서울 4년제 대학 졸업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논란을 다루는 기사에는 고졸이거나 지방대학을 나온 청년 인터뷰이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담겨야 맞지 않을까.

그처럼 ‘다른’ 청년들의 존재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자.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속한 청년 노동자 261명이 지난 6월 30일 “정규직화가 옳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정규직화에 찬성한다는 이들은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우리는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콜센터에서, 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입니다.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며, 누군가는 특수고용 노동자입니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 듣고자 하는 기자들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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