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이 씨의 소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사담처럼 해보려 한다.

집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놓여 있는 집이 있다. 이 씨의 집, 소파가 그랬다. 이 씨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이 씨는 거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보통의 회사원으로 중학생 연년생 딸을 둔 아버지였다. 이 씨는 소파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고 된 밥이 명치에 걸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욕실 형광등이 사망해 며칠째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하던 아내가 결국 이 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씨는 느긋하게 토요일 오전을 보내다가 불벼락을 맞고 슬리퍼를 발에 꿰고 형광등을 사러 가게 되었다. 한 손에 필라멘트가 까맣게 탄 형광등을 들고 상가로 향했다. 이 씨는 마트에서 형광등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상가를 구경하기로 했다. 어차피 잔소리를 들을 것이라면 천천히 집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이 씨는 항상 마트에만 들려 담배를 사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상가에 마트 외에 어떤 상점이 있는 줄 몰랐다. 마트를 중심으로 피자 가게와 치킨 가게, 완구점과 아동복 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곳에 인테리어 소품점이 있었다. 이 씨는 손에 든 형광등을 내려다보았다.

가게에는 스탠드가 많았다. 각기 모양이 다른 스탠드가 등불처럼 가게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스탠드 불빛이 고여 있는 곳마다 어둠이 움푹 파였다.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가게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씨는 얼떨결에 필라멘트가 타버린 형광등을 보여주며 같은 형광등 달라고 했다. 주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형광등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이 씨는 엄지손가락으로 형광등 유리를 매만지며 가게를 휘둘러보았다. 삼단 장식장, 오단 장식장, 화장대, 접이식의자, 소파, 테이블이 있는 곳마다 대가 길고 짧은 스탠드가 놓여 있었다. 주인이 이 씨에게 다가섰다. 스탠드를 사는 것은 어떨까요? 운치도 있고, 집 분위기도 확 달라지고, 너무 밝지 않아 수면을 방해하지도 않고, 불을 끄려고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아주 쓸모 있죠.

형광등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스탠드를 따라 가게 안을 걸었다. 스탠드는 딱 발이 움직이는 부분만큼만 빛을 비췄다. 가게는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오솔길 같았다. 색감과 질감이 다른 불빛이 발끝에 닿았다 흩어졌다. 빛이 인도하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발이 멈춘 곳은 불빛이 없는 가게 구석진 곳이었다. 소파가 있었다. 소파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법한 지나치게 무난하고 평범한 디자인의 소파였다. 60년대, 70년대에 사무실에서 사용했을 법한 모양새였다.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가죽은 딱딱해 보였다. 원목을 사용한 팔걸이와 다리가 일체형으로 연결된 소파는 덩치에 비해 다리가 가늘고 약해 보였다. 이십구만구천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가게 주인이 재빠르게 옆에 따라 붙었다. 인조가죽이지만 모던하고 고급스럽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덩치 큰 골칫거리가 분명했지만 주인은 마치 지금 들어온 새로운 물건처럼 말했다. 소파는 상가가 지어지기 전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고 건물이 철거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을 감당하기에는 다리가 애처로울 정도로 가늘고 약해 보였다. 그날 이후 이 씨는 일부러 가게 앞을 지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소파를 힐끗거리고, 또 힐끗거렸다. 계절이 두 번 지나고, 다른 상품이 빠져나갈 때까지 소파는 구석에 놓여 있었다. 고심했다. 오직 앉는 것 외에는 사용될 수 없는 물건을, 그것도 잠깐씩밖에 앉을 수 없는 물건을 이십구만구천 원이라는 가격을 주고 사는 것이 합리적인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씨가 아니면 아무도 소파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소파를 구입하겠다고 말했을 때 가게 주인의 표정은 골칫거리가 해결된 것처럼 밝아졌다. 선심을 쓰듯 오만 원을 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소파는 집으로 들어왔고, 베란다에 놓였다. 소파는 오직 이 씨만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씨를 기다려온 것처럼 몸을 받아주었고, 안아주었다. 이 씨는 포근하게 안겨 고치처럼 담요를 덮고 잠을 잤다. 담요를 덮고 소파에 앉으면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가 소파에서 하는 일은 자는 것이었다. 이 씨는 소파가 들어오고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112.39제곱미터 안에 자신의 공간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소파를 싫어했다. 소파에 앉아 내내 잠만 자는 이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는 틈만 나면 소파를 내다 버릴 생각을 했다. 소파를 버려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덩치가 너무 크다, 베란다에 소파를 놓는 집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 씨는 나에게 소파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며 웃었다. 소파가 꼭 나 같아서 말이야. 십오 년 죽도록 일만 했더니 나는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거야. 딸들과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어. 소파처럼 나를 내다 버려도 하나 이상할 것 없을 것 같아서... 이 씨가 말끝을 흐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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