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평소 사회민주주의가 잘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고 알려진 국가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민자들로부터의 이질감을 견디지 못한 한 일탈자의 만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끔찍하다. 이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맥락의 징후들이 이번 사건이 단순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테러' 그 자체이다. 테러는 폭력을 이용해 이념과 현실을 동시에 드러내는 강력한 선전수단이다. 범인은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테러리스트다운 계획을 세우고 테러리스트답게 실천했다.

그가 주장하려 한 것은 무엇인가? 노르웨이 노동당 정부가 이민자들, 특히 이슬람 세력에게 과도한 관용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타격을 입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는 소위 사이코패스임이 틀림없지만, 그가 행동을 일으키도록 한 방아쇠에 최근 유럽에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주의 등 사회적 문제가 얽혀 들어가면서 피해가 가중됐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 문제는 사회적 관점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유럽을 뒤덮고 있는 극우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향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05년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소위 '방리유 사태'이다. 프랑스는 역사적 경험과 지리적 여건 때문에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사회적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게 되면서 일어난 폭동이 '방리유 사태'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내무부 장관은 이들을 '쓰레기'라고 지칭하며 강경진압을 밀어붙였고 이 사태는 결국 프랑스에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이민자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 번째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영역에서 내국인 빈곤층과 외국인들이 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 건설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일당 잡부'로 일하게 된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싼 임금에도 만족하는, 일종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외국인 인력에 엄청난 적대감을 갖고 있고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두 번째는 성비불균형에 따른 소위 국제결혼과 관련한 여러 문제인데, 이는 사회의 경제적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여성들이 보다 나은 경제력을 갖춘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사실상 경쟁력 있는 남성의 대열에서 탈락한 이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여 돈을 긁어모아 국제결혼을 시도하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그 정도를 더하고 있는 ‘된장녀’ 등 여성에 대한 남성 일부의 비난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유럽으로 눈을 돌려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런 경향은 단지 이러한 국가들이 다른 민족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민자들이 내국인을 향한 복지정책에 무임승차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그들을 향한 차별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테러나 반인륜적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오히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극우주의가 득세하는 시점과 맞물려 진행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우경화라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유럽에서 빈곤과 차별은 오직 이민자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경기침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였다. 영국 노동당이 그랬고 독일 사민당이 그랬으며 이번에 문제가 된 노르웨이 노동당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정적인 삶은 보다 많은 이윤 창출과 효율적인 자본의 축적을 위해 잠시 뒤로 미루어졌다.

물론 우리도 익히 경험했듯 이러한 조치들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유럽인들은 어설픈 좌파정당이 개혁을 하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인 우파정당에게 정권을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사태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유럽의 유력한 여러 국가들에서 그동안 정권을 잡고 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로부터 더욱 급진적인 좌익 분파들이 탈출하기 시작했고 우파정당이 정권을 잡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언급했듯이 노르웨이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감동적인 연설로 화제가 된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정치인 가문의 엘리트로 산업부 장관, 재정부 장관을 거쳐 2000년에 노르웨이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결국 2001년 위에 언급한 흐름들로 우익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가 2005년에 뛰쳐나간 좌익 분파들과 연립정권을 수립함으로써 간신히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 28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시론. 이번 노르웨이 테러를 분석하며, '빈번한 동거문화'를 한 원인으로 꼽았다.이다. 또한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자녀가 많아 가족 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족의 정상성에 대한 편견과 가족 해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이 시론은 그러나 다문화 정책을 펴나가면서 소외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럽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지 않느냐하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유럽의 경우처럼 진보 내지는 중도좌파로 인식되는 정치세력이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주도했다가 그 결과 때문에 정권을 잃었다. 그리고 그 정치세력은 보다 급진적인 정치세력과의 정치연합을 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파정부는 다문화가정과 이민자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외치며 이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모순을 은폐한다.

글의 서두에 이야기하였듯이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라는 노르웨이 테러의 범인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로 이민자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누군가를 해치기는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노동당 청소년 캠프가 열리고 있는 우토야섬에 가서 이슬람 세력을 비호하는 젊은 노동당의 새싹들을 학살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개혁 정책으로 고통받았고, 이는 이민자들에 대한 분노로 쉽게 은폐되었으며, 국민의 다수가 루터교 신자인 국가적 특성은 특히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부추겼다.

우리나라에도 브레이비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을 수 있다. 당장 그런 사람들을 모두 적출해서 사회로부터 분리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정치'를 진지하게 사고한다면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정치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것은 너무 뒤늦었을 것이고 어떤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강력한 대중운동 조직을 가졌던 노르웨이 좌파들의 행보를 주목해볼만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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