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기자로서 ‘최소한의 품격’은 지키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중앙일보 기자들은 그 기대를 저버렸다.

4일 오후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 중앙일보 기자 4~5명이 홍 회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가로막아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서 중앙일보 기자들과 취재진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아수라장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방송 카메라 한 대가 파손되기도 했다. 해당 방송사들이 중앙일보 측에 항의하는 소동도 빚어졌다고 한다.

▲ 한겨레 3월5일자 5면.
조사 마치고 나오는 홍석현 회장 ‘경호원 역할’ 나선 중앙기자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에 대한 ‘과잉보호’ 논란은 어제(4일) 특검팀에 출두할 때부터 제기됐다. 오늘자(5일) 한겨레에 보도된 기사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홍 회장이 특검 사무실 건물로 들어서자 포토라인 뒤쪽에 서 있던 해고노동자 전순선(29·여)씨가 ‘시급 3400원, 한달 500시간. 초일류 삼성의 현실’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올렸다. 순간, 중앙일보 조인스 영상취재팀 기자가 촬영장비를 이용해 전씨를 건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전씨는 ‘홍 회장이 들어서자 중앙일보 기자가 나를 등으로 밀더니 카메라로 찍는 척하면서 나를 막았다’고 말했다.

몸싸움이 벌어지자 취재기자들과 다른 해고노동자들이 해당 기자에게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중앙일보의 다른 직원이 이를 만류하는 틈을 이용해 쏜살같이 도망쳤다. 한 취재기자는 ‘홍 회장 출석 전에 중앙일보 관계자가 문제의 기자에게 해고 노동자 쪽을 가리키며 ‘저쪽을 맡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쪽은 ’시위대의 손목과 손팻말을 잡은 것은 특검 사무실의 방호원인데, 동영상팀 기자가 이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엉긴 것 같다. 몸싸움이 있었지만 애매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사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홍석현 회장 검찰 출두와 중앙일보 기자들과의 ‘질긴 인연’은 지난 1999년부터 시작됐다.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중앙일보 기자들은 검찰 청사 앞에 일렬로 서서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친 바 있다. 당시 언론계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또 있다. 지난 2005년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검찰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홍석현 회장 앞으로, 구호를 외치며 다가서려던 민주노동당원을 당시 중앙일보 기자(사진부 차장)가 손으로 ‘밀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리고는 이제 2008년, 중앙일보 기자들은 해고노동자를 가로막더니 방송사 카메라까지 ‘작살내’ 버렸다.

홍석현 회장 '주장'을 주요하게 보도한 중앙일보

▲ 중앙일보 3월5일자 10면.
오늘자(5일) 한겨레는 ‘새로운 사실’도 전하고 있다.

“홍 회장 출석 전날에도 중앙일보 관계자 두 명이 특검 사무실 내부 구조를 파악하다 취재진이 따라붙자 황급히 몸을 피하기도 했다.”

홍석현 회장과 중앙일보 기자들 ‘때문에’ 4일 삼성특검팀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지만 정작 이를 전하는 오늘자(5일) 중앙일보 지면은 상당히 조용하면서 차분(?)하다. 차분하다 못해 홍 회장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으면서 '홀로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분위기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치지는 못하고 작게 외친다. 중앙일보는 오늘자(5일) 아침신문 가운데 가장 작은 지면(2단)으로 홍 회장 검찰 출두 소식을 전했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다른 신문방송사들이 대대적으로 홍 회장 특검 조사를 전하고 있는 것과는 참 대조된다. 동아와 조선일보도 나름 지면을 비중 있게 처리하고 있는데 중앙의 지면배치는 어떻게 보면 정말 초라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사 회장이라고는 하나 ‘자신들 때문에 빚은 파문’을 생각하면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결국 중앙일보 기자들은 ‘취재현장’과 ‘지면’ 모두, 기자로서의 자존심과 품격은 내팽개친 꼴이 됐다.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저널리스트’란 어떤 것인가. 언론인에 대한 신뢰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 기자들의 ‘행태’를 보며 한편에선 절망감을 또 한편에서는 참담함을 느낀다.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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