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로 거대양당 설득을 통한 국회 본회의 통과가 관건인 상황이 조성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시작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을 이유로 사실상 외면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이목이 집중된다.

녹색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29일 논평을 내어 "이제 민주당의 시간이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녹색당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셨으나 이루진 못하고 남기신 평등 사회를 위한 초급 과제를 이제 민주당이 마무리하는 것은 어떤가"라며 "시민의 삶을 위한 개혁이라면 반대세력의 생때가 어떠하건 힘있게 추진하라고 주신 절반이 훌쩍 넘는 의석일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30일 사설 <다시 발의된 차별금지법, 민주당이 책임지고 통과시켜야>에서 "이제 차별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는 시민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답할 차례"라며 "특히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온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구차한 변명 뒤에 더 이상 숨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노무현 정부가 시작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이 법 제정을 민주당이 외면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민주당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그간 차별금지법 추진 과정에서 현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민주당 진영의 입장이 퇴보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안을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정부입법 형태로 발의했으나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17대~19대 국회에서 총 7번에 걸친 차별금지법 발의가 있었지만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2013년 민주당의 전신 민주통합당에서 발의된 김한길, 최원식 의원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차별금지법'은 보수 기독교계의 대대적 반대운동 전개로 철회됐다. 당시 김한길 의원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 51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추진했지만 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상황을 되짚어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논의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검토는 이어져왔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법무부 산하에 사회 각계 추천을 받아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다만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특별분과위원회 운영 만료 이후에도 법무부에서 별다른 입장이 나오지 않자 논의 중단에 대한 우려를 담은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는데,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원만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법 제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답하면서 차별금지법 추진이 사실상 중단되었음이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는 UN 인권이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포함해 발표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장혜영 의원 등이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관련 논의가 사실상 없다.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2013년 당 국회의원들의 발의법안이 철회된 이후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17년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의 면담 자리에서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되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추가 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된다는 것이 민주당의 공식입장"이라며 "우리 당 입장이 확실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말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유엔인권이사회가 권고한 218개 권고 중 121개를 수용하고 97개를 불수용했는데, 이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 소수자 인권 관련 23개 권고는 모두 불수용했다. 문재인 정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안은 과거 보수정부와 비교해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8년 발표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성소수자'는 사회적 약자 목록에서 제외됐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연구', '검토', '입법'의 영역으로 남았다.

21대 총선 과정에서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민주당 곳곳에서 등장했다. 당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성소수자 문제를 두고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고 말했다. 지역구 TV토론에서 고민정 후보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2013년 차별금지법을 공동발의한 우원식 후보는 법안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에 반대하고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통적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해 온 미래통합당이 성적 지향 조항을 제외한 차별금지법 발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의 태도에 이목이 더욱 쏠리게 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이제 집권당인 민주당만 남았다"며 "민주화 세력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민주당이 또 그래서 압도적인 국민 지지로 슈퍼여당이 된 민주당이, 국민의 88%가 염원하는 차별금지법 법제화에 책임있게 나서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한 이유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는 '의견표명'을 결의했다.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에 관한 의견표명은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법안 명칭을 '평등법'(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변경하고, 평등법 시안을 발표했다. 성별, 장애, 성적지향, 고용형태 등 21가지 차별사유를 규정했다. '악의적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를 입은 금액의 3배~5배까지 배상하도록 했고, 차별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때는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한 최근 국민 여론은 우호적 응답이 높다. 지난 23일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21대 국회, 국민이 바라는 성평등입법과제' 조사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87.7%가 "성별,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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