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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 왕재를 둘러싼 파워게임, 진정한 리더의 조건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6.29 13:03

[미디어스=이정희] 27일, TV조선의 사극 <바람과 구름과 비> 12회 방영분이 6.32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선 12회, 이야기 진행 과정으로 봤을 때 제작진이 희망했던 10%의 고지도 예상해 볼 만한 기세다. 

<바람과 구름과 비>가 주말 밤 11시,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드라마도 4%만 넘어도 중박이라고 하는 열악한 시청 환경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제작비 등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통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해소됐기 때문일까? 매회 한씬 한씬 허투루 넘어가는 장면이 없는 제작진의 정성, 거기에 더한 배우들의 열연은 그간 사극에 목말랐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세도 정치와 무능한 권력으로 인해 사그라들어가는 조선 말의 역사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소재이다. 그런 익숙한 소재를 '점바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주 명리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통해 재해석하고 있는 <바람과 구름과 비>는 정통 사극의 변주로 역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며 호평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변주'의 성격에 있어서 드라마는 옛것을 통해 오늘을 살펴보고자 하는 '온고지신'의 배움이 가득하다. 특히 12회에 등장한, 조선을 뒤덮은 역병은 아직까지 '코로나19 팬데믹'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거울이다. 

왕재를 둘러싼 파워게임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후사가 없던 철종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던 이하전(이루 분)은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했다는 이유로 장동 김문의 김병운(김승수 분)을 공격했지만, 외려 그의 농간에 결국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고 만다.

그를 앞세워 자신은 물론 자기 가문의 앞날을 보전하려 했던 신정왕후 조씨(김보연 분)는 그만 자리를 보전하고 눕고 마는데, 그런 대비 앞에 송전이라는 점바치가 철종 이복형 아들이라는 영운군을 데리고 등장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이하전과 똑같은 사주에다, 그와 비슷한 흉터까지 있는 영운군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대비는 철종에게 어서 빨리 후사를 정하라 재촉한다.

거기에는 앞서 최천중(박시후 분)이 왕재라 천명한 이재황(박상훈 분)의 아버지 이하응에 대한 ‘견제심리’와, 만만한 영운군을 앞세워 대비의 가문인 조씨 가문의 득세를 기도하고자 하는 '권력욕'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영운군 뒤에는 정작 실세인 장동 김문이 있었으니, 후사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향배는 점입가경이다. 

이에 철종은 이재황을 왕재라 천명한 바 있던 최천중을 부른다.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를 둘러싼 두 점바치 최천중과 송전의 갑론을박. 이에 두 사람이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예언을 놓고, 그들이 선택한 왕재의 진실성을 결정하기로 한다. 

송전이 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라의 앞날이 태평성대가 될 것이며 세손까지 올해 안에 볼 것이라 장담한 반면, 최천중은 최근 한 달간 천기를 살펴본 결과 나라에 역병이 돌 것이라 예언한다. 발칵 뒤집힌 조정. 이미 철종 3년에 역병으로 한바탕 위기를 겪은 조정은 최천중의 예언을 놓고 그의 목숨을 겁박한다. 

최천중은 왜 불길한 예언을 했을까?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그런데 왜 최천중은 철종 앞에서 가장 불길한 운세를 예언했을까? 거기에는 이미 빈촌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 역병이 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토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 하지만 이를 담당해야 할 혜민서와 한성부 관리들은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 철종이지만, 실세인 장동 김문의 방해로 '보고' 계통조차 막혀 있는 상황. 이에 천중은 차기 왕재를 가리는 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왕에게 역병에 대비를 '충언'한 것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또한 역병을 둘러싼 권력의 민낯을 까발린다. 역병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고 치료에는 예산이 필요한데, 그 긴급성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동 김문은 빈촌은 습해서 역병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며 콧방귀를 끼며 일축한다. 한 술 더떠 나랏돈을 쓸데없이 백성들에게 쓰지 말란다. 그들에게 나랏돈은 자신들의 뒷배이지 백성들에게 쓸 돈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의 실세와 그 밑의 관리들이 빈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역병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상황은 김씨 세도의 조선이 왜 '침몰하는 배'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그렇게 권력의 중심이 백성의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역병의 중심지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명성황후의 캐릭터로 보자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가난한 아이들을 보살펴 온 민자영이, 그리고 그의 청을 받아 봉련이 빈촌으로 달려간다. 

봉련이 던진 ‘왜 너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민자영은 ‘장동 김문에 의해 부숴지는 유접소를 구하기 위해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던 천중의 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민자영을 감화했듯이 천중은 그 자신의 돈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역병 치료약을 구해 등장한다. 

앞서 강가에서 천문을 보고 역병을 예감한 천중은 자신의 오른팔인 용팔용에게 미래를 묻는다. 침몰하는 배. 그곳에서 탈출할 것인가, 그 침몰하는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려 애쓸 것인가. 멸문지화를 입고 홀로 살아남아 사주 명리학을 익히며 조선의 운명을 예감한 천중. 그가 말하는 침몰하는 배는 바로 권문세족의 횡포로 침몰하는 조선이었다. 

침몰하는 조선에서 탈출하는 대신, 그곳의 사람들을 구하기로 결심한 천중은 치료약을 구하는 등 역병에 대비한다. 하지만 그런 천중의 '선한 의도'에 대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장동 김문 등 조정은 천중이 역병을 퍼뜨렸다는 마타도어로 대응한다. 역병 치료에 앞장섰지만 외려 잡혀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가 왕재인가?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12회, 과연 ‘누가 왕재인가’로 시작된 <바람과 구름과 비>. 역병이 돌자 이하응은 지금 왕재를 논할 때가 아니라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역병의 역습은 과연 누가 ‘진짜 왕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기생의 치맛자락 밑을 기며 온갖 수모를 참아내며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왔던 이하응. 예산 편성을 해주지 않는 김문에게 분노하고 복지부동 관리들에게 빈촌의 진흙 세례을 퍼붓는 이하응이라면, 여러 패착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재건하고자 했던 대원군의 기세를 읽을 만하다. 

그에 반해 철종 이복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등장하여 대비를 등에 업은 영운군이야말로 또 한 사람의 철종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바람과 구름과 비>는 그렇게 조정의 왕재 싸움 중에서도 역병에 대비하기 위해 왕에게 간언을 서슴지 않고, 사재를 털어 역병 치료약을 사들인 천중의 행보를 대비시킨다. 

봉련의 어머니는 천중에게 ’슬피 우는 용‘이라 했다. 용이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닐까. 혈통으로 인증받는 왕재의 나라에서, 그의 언행에 탄복하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침몰하는 배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애쓰는 천중이야말로 그 시대에 진정 필요한 '왕재', 즉 리더가 아닐까. 알량한 혈통에 연연하며 왕재에 매달리는 조정은 침몰하는 배의 또 다른 방증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권력의 민낯은 그저 왕조시대의 잔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씁쓸함을 남긴다. 그 반면 침몰하는 조선을 예감했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천중. 중반을 넘어선 <바람과 구름과 비>는 왕재를 둘러싼 파워게임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조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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