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텔레그램 n번방 불법성착취영상거래 사건의 후속 대응을 위한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처벌법'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새다. 채팅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유인 행위 등을 처벌하고,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가 가능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다만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는 2차 피해 유발, 수사기관의 위법행위 개입, 재판단계에서의 증거능력 상실 등의 가능성이 있어 향후 면밀한 법적 검토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진선미, 임종성, 정춘숙, 권인숙, 한준호 의원실 주최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가 열려 온라인 그루밍·잠입수사 입법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진선미, 임종성, 정춘숙, 권인숙, 한준호 의원 주최로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앞서 권인숙 의원은 지난 11일 1호 법안으로 이른바 '온라인그루밍 처벌법'을 발의했다. 권 의원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유인·권유행위를 처벌하고,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위장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과 부가통신사업자(콘텐츠제공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삭제,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유인·권유 행위에 대한 접속차단 등의 유통방지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지난 4월 범부처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온라인 그루밍 처벌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정책과 제도가 사건 발생 이후 후속 대응으로 이뤄지는 데 책임을 통감한다며 정책제안을 수렴하고, 지속적 관심을 통해 해당 법안을 반드시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은 "법안을 준비하며 든 생각은 '어떻게 이걸 지금하고 있을까'였다. 온라인 세계가 열렸을 때 아동·청소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기 너무 쉬운 문제였다"며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해 몸부림치는 호소가 있어왔지만 우리사회가 대응하지 못하면서 n번방 사건이라는 무서운 형태로 일어났다. 늦었지만 더 책임있게 소명감을 느끼고 의원들과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국회 부의장도 "달라진 세상에서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현실을 알지 못한 책임을 많이 느낀다"며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지만 실효성 있는 예방책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국회가 작동되기 시작하면 무엇보다 먼저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제대로 근절하는 개선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발제자들은 온라인 그루밍과 위장수사에 대한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종상 경창철 사이버수사과장은 IP추적이 어려운 해외메신저 활용, 개인 간 비밀채팅방, 가상화폐 거래 등 신종 디지털 성범죄의 은폐성을 고려할 때 위장수사 도입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만 최 과장은 위장수사 남용, 수사관의 위법행위, 증거능력 상실 등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법적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위장수사의 개시요건을 범인체포·증거수집이 어려운 경우 등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강화해 규정하고, 개시 승인 주체를 상급관서 수사부서의 장으로 올리고, 수사기간도 일정 기간동안으로 한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정연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보호과장은 온라인 그루밍 법제화와 관련해 친밀감을 쌓는 행위 자체는 죄형법주의 상 규정하기 곤란해 그루밍 과정 상 포착될 수 있는 객관적 행위 중 불법성이 높은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과장은 영국, 호주, 미국 등 해외입법례를 살펴보면 온라인 그루밍은 '성행위를 목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통해 조장·유혹·유인·권유·강요·대화하는 행위'로 명명되고 있다며 그루밍 과정상의 성적대화, 유포협박, 만남요구·약속 등 구체적·객관적 행위를 법적 '그루밍'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 과장은 위장수사는 온라인 그루밍 법제화와 '패키지'로 반드시 함께 법에 담겨야 하는 조항이라며 "위장수사가 시행돼야 그루밍 범죄에 대한 포착과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과정 자체가 가해이자 범죄라며 만남의도와 무관한 온라인 그루밍을 범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온라인 제의들은 오프라인 상에서 성적인 만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가해자들은 직접 만나지 않는 비접촉 범죄를 통해 성적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며 "아동을 만나기 위한 명확한 의도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이미 아동이 그루밍을 당했거나 비접촉 온라인 성학대를 당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동을 보호하기에 너무 늦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대표는 그루밍 방지의 핵심은 보호자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사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모든 종류의 그루밍 행위를 법제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행동강령, 자체규약, 징계조항 등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통해 그루밍을 방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신고의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성착취 정황을 발견하면 이를 경찰에 신고·통보하는 제도를 아청법 등에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착취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어진 토론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의 재영 활동가는 위장수사의 필요성과 위법성 논란에 대해 "수사관이 수사 용도로 16세 여성 아동·청소년의 계정을 생성하기만 한 것을 '사술이나 계략'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먼저 조건만남이 가능한지 등을 물어오는 경우 '범죄 의도를 가진 자'로 판단할 충분한 고의성이 입증된다"고 했다.

또 재영 활동가는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있어 다각적 협력체계 구축 필요성을 언급하며 "(경찰은)활동가가 텔레그램 내 성착취물 유포 가해자의 계좌번호까지 알아냈음에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활동가에게 성착취물을 구매할 것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재영 활동가는 "이처럼 실제 처벌을 요구할 목적으로 참고인 신분인 공익신고자가 증거 수집을 위해 범행에 가담하는 척 함정 수사를 진행한 경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우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온라인 그루밍과 위장수사 법제화의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수사 특성상 수사관이 위법활동에 개입할 수밖에 없고, 수사기관에 의해 새로운 범죄가 발생해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검사는 위장수사 활성화가 범죄심리를 억제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의 사생활 영역까지 국가에 의해 감시가 일어날 수 있고,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위장수사가 개시되면 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구체적 입법 방안은 필요성과 무관하게 제도의 성질과 기본권 침해소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신고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위장수사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증거능력에 위헌 시비가 발생할 수 있고, 온라인 그루밍은 범죄에 이르렀는지 경계가 모호한 행위들이 다수 존재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법제화되어야 할지에 관해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신 변호사는 "위장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위법행위들로부터 수사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 때 수사관에 대한 불가벌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수사관의 위법행위로 인해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범죄의 피해자가 발생했는지다"라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유포된 영상물 피해자로부터 범인 검거 등의 목적을 동의받는다고 해도, 새로운 피해를 발생시키는 행위가 적법한 위장수사로 여겨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장수사 법제화 필요성이 이전부터 논의돼 왔음에도 지금까지 머무르는 이유는 기망의 수단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 증거능력 논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마약수사에서 정당성과 적법성이 확립되어왔기 때문에 마약범죄와 유사한 디지털성범죄에서의 논란은 여지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위장수사가 만능의 기법이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은 차선의 여러 수법을 결합해 대응해야 하는 문제"라며 "'박사'와 '갓갓'의 검거는 위장수사로 이뤄지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 수단 중 하나로써 위장수사를 인정하고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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