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노동자가 근무 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언론의 관심은 인기차종의 '생산차질'이었다. 노동계가 이 같은 언론보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지만 현재까지도 같은 맥락의 보도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9시경 울산의 자동차부품생산업체 덕양산업 공장에서 사내 하청노동자 A씨(56세·여)가 금형에 끼어 숨을 거두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12일부터 이어진 언론보도 상당 수는 팰리세이드를 비롯한 현대차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했다. 당시 기준으로 한국경제, 조선비즈, 이데일리, 매일경제, 아시아경제, 머니S, 아시아투데이, YTN, 연합뉴스, 뉴시스 등의 언론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한국경제 6월 12일 <[단독] 현대차 '팰리세이드·코나' 생산 중단 위기>

12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은 논평을 내어 "사람이 죽었는데, 팰리세이드부터 챙기나"라며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안전보다 생산, 생명보다 이윤이라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든 살인이다. 그런데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접근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며 "아무리 경제지라고 해도, 아무리 현대차가 광고물주라고 해도 사건 속보에서조차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대기업의 생산차질에 주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라고 질타했다.

이어 금속노조는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으면 죽음 그 자체와 죽음의 원인에 주목하는 것이 상식이지, 죽음으로 인해 잘 팔리는 자동차 못 만들게 됐다고 보도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는 생산물을 위해 감히 죽어서도 안 되는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라며 "각 매체의 편집국장에게 묻고 싶다. 인간의 죽음 앞에서 팰리세이드부터 생각하는 게 적절한지를"이라고 물었다. 금속노조는 "기사 한 줄과 방송 1초가 아쉬운 노조 입장에서 매체에 싫은 소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대표적 사례는 한국경제 보도다. 한국경제는 12일 <현대차 '펠리세이드·코나' 생산 중단 위기>라는 제목의 단독 보도를 냈다. 한국경제는 "현대자동차의 인기 모델인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와 소형 SUV 코나 생산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이들 차종에 들어가는 운전석 모듈(크래시패드) 등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해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라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경제는 덕영산업 노동자 사망 소식을 전한 뒤 "사고 발생 이후 현장 보전을 위해 해당라인 생산은 멈췄다"며 팰리세이드와 코나의 국내외 인기를 설명했다. 한국경제는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내수 시장에서만 2만 4134대가 팔린 현대차의 대표 SUV"라며 "국내외에서 주문이 밀린 탓에 지금 계약해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수요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자동차 업계에선 덕양산업 가동 중단 여파로 현대차 울산공장의 생산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전석 모듈 등은 부피가 큰 탓에 완성차 공장 내에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현대차 관계자는 "가용재고를 현재 확인하고 있으며 주말을 앞두고 있어 실제 생산 차질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경제는 다시 <현대차, 팰리세이드·제네시스 GV80 생산라인 결국 멈췄다>라는 기사를 내놨다.

한국경제에서 12일 단독 보도 이후 이어진 언론보도

14일 한국경제는 <현대차 팰리세이드·GV80 생산 이르면 16일 오후 재개될 듯>기사를 내어 같은 맥락의 보도를 이어갔다. 해당 기사의 소제목은 '고용부 강도 높은 사고원인 조사' '덕양산업 15일 재발방지 대책 고용부에 제출할 듯' '아반떼 등 울산공장 3공장, 16일부터 가동중단될 수도' '협력사 덕양산업 산재 여파로 운전석 모듈 공급 끊겨' 등이다.

15일에는 연합뉴스 <현대차 팰리세이드·GV80 또 생산 중단…협력업체 사고 여파>기사를 내면서 약 20여개 매체에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16일에는 현대차가 생산라인을 재가동하면서 '오전조부터 팰리세이드 생산라인 재가동' '협력사 사고로 멈춘 GV80 생산라인 재가동' '고용부, 전날 사고업체 작업중지 해제' 등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경제신문의 지분 20.5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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