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많이 어렵다. 예견된 일이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6월의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진보진영의 상황에 대한 얘기다. 당시 썼던 미디어스 칼럼에서 예측했던 대로 국민참여당 측에 사실상 공이 넘어가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일단 국민참여당의 분위기부터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대체 왜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과 힘을 합치려 하는가?'에 관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이 점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참여정부 시절 진보진영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까지 한미FT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대해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놓고 보면 이러한 행보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두 가지 측면을 놓고 봐야 하는데 첫 번째는 친노의 역사적 뿌리가 '운동적 맥락'에 포섭되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과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 갖는 감정과 유사하게 국민참여당이 민주당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열린우리당 문제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당 민주주의 구현과 지역주의 타파를 핵심적 가치로 내걸고 있었다. 친노세력의 다수는 열린우리당을 통해 그들이 주장한 개혁적 가치를 관철시키려 했다. 문제는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낮은 대통령 지지율을 털어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한 민주당 내 정치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사실상 깨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조직투표를 동원해 승리하면서 지금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친노세력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됐다.

▲ 진보신당 조승수대표와 민노당 이정희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열린 진보신당 2011년 2차 임시 당 대회에서 자리를 같이한 모습.ⓒ연합뉴스
최근 국민참여당의 '따뜻한 라디오'에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출연하여 유시민 대표와 대담을 진행하였는데, 유시민 대표는 차이를 인정하는 야권통합을 강하게 주장하는 문성근 대표의 주장에 '그냥 무시하기만 해도 고맙다고 할 텐데, 마치 우리를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인 양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놓고 통합하자고 한다'며 민주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이는 진보정당들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언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국민참여당 측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꼭 국민참여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가령 친노 분파 중 민주당 바깥에서 야권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친노의 또 다른 구심점 이해찬 전 총리 등의 움직임이 그렇다.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는 진보정당에 대한 적극적 구애를 펼치는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망론'이라는 화두가 서서히 실체를 갖춰가는 이 상황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은 4월 재보선을 통해 더 이상 민주당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서는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이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면 사실상 정당의 기반을 상실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당 내외의 친노세력을 묶어내고 이들을 범민주당 계열 대선후보를 지지하도록 강제하는 프로젝트에 함께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까지 끌고 가는 역할을 맡는 전망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논의 역시 범민주당세력과 진보정당세력의 대선전술이 포인트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유시민 대표는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도모하면서 대선후보로 출마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결국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 함의로 해석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국민참여당이 자신이 아닌 다른 범민주당계열 대선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새로운 진보정당의 후보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출신 정치인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하나마나한 얘기니 후자에 대해 집중해보자. 유시민 대표가 대선 출마를 포기한다면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 이정희 대표일 것이다. 그 당에는 민주노동당 출신이 가장 많을 것인데다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행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면이 있으므로 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도 이정희 대표를 가장 많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가?

사실 진보세력이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다수의 진보진영 지지자들의 공통된 정서이고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역사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시민 대표가 진보정당 출신 정치인에게 대선 출마를 양보한다고 하면 진보정당의 구성원 및 지지자들은 이것을 '국민참여당을 견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이정희 대표는 이해찬 전 총리로부터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대상이며 그의 지역구를 사실상 물려받았다. 민주당이 야권연대를 통해 이정희 대표의 지역구를 보장해주는 결정을 한다고 해도 민주당 공천탈락자의 무소속 출마 등의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경우를 생각해볼 때 전략적으로 범민주당 세력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건 뒤집어 얘기할 수도 있는데, 즉, 이정희 대표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범민주당세력이 대선을 취하기 위해서 이정희 대표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작동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혹시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대표를 비롯한 친노세력은 대선 국면에서 이정희 대표가 진보정당의 대선 후보가 됐을 경우 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이정희 대표 본인도 정권교체를 제 1의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 말했듯이 민주노총 활동가 등의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은 이번 대선에서도 진보진영의 후보가 독자적으로 출마하길 바라고 있는데 이러한 바람이 실현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진보신당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가장 유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심상정 전 의원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최근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선까지의 로드맵을 거의 다 밝혔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을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녹색사회당 등 등대정당파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잘 할 것이며, 대선에서 연립정부를 걸고 멋있는 단일화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가 대선후보가 될 경우 지금과 같은 정치적 상황이 이어진다는 전제 하에서는 대선을 완주할 확률이 매우 낮아지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느 쪽의 전술이 옳든, 결국 대선 완주를 바라는 진보진영 일각의 바람은 현재의 구도 하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기정사실화 되거나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대선 전술에 대한 논의가 시기상조여서가 아니라 아무도 이 얘기를 꺼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란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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