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15일 새벽,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언론학자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7년 7월, KBS·MBC 두 공영방송에서 사장 퇴진 운동이 일었을 무렵 당시 한겨레 칼럼 '물러나라'로 화제를 모았다. 칼럼 지면을 빼곡히 채운 "물러나라"는 서술어 앞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나는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사람이라는 것을. 공영방송의 기본인 공정성과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수많은 증거와 증언이 속출하고, 내부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퇴진을 원하고 있는데도 꿈쩍 않고 있는 이들에게는 설명과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하릴없이 다음과 같이 외친다"

2019년 '한국언론학회 창립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의 김세은 교수 (사진=한국언론학회)

김 교수는 2016년 9월부터 1년여간 한겨레 '미디어 전망대' 코너 필진으로 참여해 독자들과 만났다.

2016년 11월 <'기자정신'이 만드는 민주주의>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언론의 역할을 조명했다. 이 글에서는 김 교수가 바라는 우리사회의 언론상이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김 교수는 TV조선이 밝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한겨레가 추적해 실체를 드러내고, JTBC의 '최순실 테블릿PC' 보도에 모든 언론이 뛰어드는 상황을 보며 "연일 특종과 단독이 쏟아진다. 언론이 비로소 그동안의 불신과 폄하를 벗어나며 존재의 이유를 마음껏 과시하는 것 같아 고맙고 반갑다"고 총평했다.

그는 "권력과 자본이 감추려는 진실을 밝히는 것, 그래서 사회가 바람직하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 일을 하는 기자는 특별하고 소중한 직업이며, 그 어떤 직업보다 투철한 직업정신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통한 특종'이 지닌 가치를 추켜 세우면서 여론과 상업적 이해, 언론사의 부담과 잘못된 관행 등으로 퇴색해가는 특종의 가치를 우려, '저널리즘'을 중심에 둔 '언론사 간 연합과 연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비록 추구하는 이념과 이상은 달라도 그 기본과 목표는 오로지 저널리즘이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의 역할과 소명에 충실할 때 권위와 신뢰도 생겨난다"고 조언했다.

연장선상에서 김 교수의 비판은 비단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보도를 넘어 기자의 직업정신을 향했다.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대선국면이던 2017년 2월, 반기문 캠프의 언론인 출신 인사들을 거론하며 쓴 칼럼 <돌아온 '폴리널리스트'의 계절>에서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다시 언론계로 버젓이 돌아오는 사례도 생겨나는 마당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언론인이 폴리널리스트로의 변신을 도모하는지 모를 일"이라며 "하루아침에 정치인이 된 언론인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이야기하기엔 그가 언론인으로서 수행했던 업무의 공공성이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정치적 소신을 내세우기엔 그로 인한 언론 전체의 신뢰 추락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한겨레 2017년 7월 28일 <[미디어 전망대] 하릴없이 외친다 '물러나라'>

해직언론인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2017년 3월 칼럼 <언론에도 촛불이 필요하다>에서는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 과거 보수정권에서 해직된 YTN, MBC 언론인들을 열거하며 "'촛불 앞에 부끄러운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의 외침에 귀기울이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상암에도 촛불이 필요한 이유"라고 적었다.

언론의 기본과 목표는 오로지 저널리즘이어야 한다는 그의 당부와 비판은 자신이 속한 언론학계에 이어졌다. 2016년 12월 실린 <학자의 공정성, 학회의 독립성>에서 그는 이른바 '폴리페서'와 학회의 '주문형 세미나'를 비판했다. "언론도 그렇고 학회도 그렇고, 성찰하는 인간과 조직은 희망이 있다"는 지론에 따른 비판이었다.

그의 비판은 소위 '진보언론'과 자신이 칼럼을 연재 중인 '한겨레'까지 이뤄졌다. 2017년 5월 칼럼 <'진보언론'의 딜레마>에서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보언론과 시민 사이의 갈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진보언론의 딜레마, 즉 '구조적 관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시민들의 문제제기와 합리적 의심을 수용해 자양분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엘리트로서의 기자, 가르쳐야 하는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수용자'라는 관계 도식을 고집하고, 시대정신과 유리된 채 감시와 비판만 하려 들면 시민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6월 칼럼 <'한겨레신문이라면'>에서는 "한겨레를 쓰려는데 자꾸만 '헌겨레'로 오타가 난다"며 "계속 고치다가 문득, 어쩌면 한겨레가 가져던 새로움과 혁신의 본능은 소멸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주류언론의 하나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난다"고 썼다.

이들 칼럼에서 드러나는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그의 연구를 바탕에 두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와 언론인: 언론이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의 문제'(2003) '민주주의와 언론의 신뢰'(2006) '해직 그리고 그 이후… 해직 언론인의 삶과 직업을 통해 본 한국 현대언론사의 재구성'(2010) '해직 언론인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 연구'(2012), '사회 갈등과 미디어'(2012) '폴리널리스트가 만들어내는 한국 언론과 정치 지형의 문제'(2014) '디지털 시대 특종의 사회학'(2017) '신해직 언론인의 압축적 생애사를 통해 본 한국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2017) 등의 논문을 남겼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장을 역임한 그는 '저널리즘과 여성의 이중 재현'(2007), '고립되고 불안한 미생들과 학문공동체로서의 학회 : 여성신진연구자들의 연구 및 학회활동과 학회의 길 찾기'(2017), '미투 운동(#Metoo)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저널리즘 관행과 언론사 조직 문화:여성기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2019)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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