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 선생님의 5월 7일 기자회견 직후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관한 보도가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졌다. 의혹을 던지는 언론매체는 수십 곳인데 의혹에 답할 정의연은 단 한 곳이었다. 정의연이 각각의 의혹들에 해명하는 사이에 더 많은 의혹들이 쌓이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정의연은 ‘비리단체’의 낙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채로 한 달 넘게 흘러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쏟아진 보도들 가운데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는 얼마나 되었으며 왜곡보도나 명백한 오보는 얼마나 되었는지를 따져보는 대차대조표를 그려볼 필요도 있겠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성찰과 개선이 필요한 문제제기도 물론 더러 있었으나,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거치지 않은 듯한 함량 미달의 오보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일보가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한 ‘맥주값’ 의혹(“맥주값 3339만원 썼다던 정의연, 430만원 결제”)을 들 수 있다. 국세청 공시된 정의연의 기부금 활용실적 명세서 상 맥줏집에서 3천여만 원을 썼다는 내용에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이는 명세서 양식에 따라 여러 건의 지출항목을 ‘대표지급처’와 ‘총 지급액’으로 묶어 기록한 것을 잘못 읽은 오보(미디어스, “정의연·윤미향 향한 보수언론의 도넘은 공세")였다. 정의연은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보도가 오해임을 해명했으나, 조선일보는 아직까지 정정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탈북자 1인의 증언에만 의존한 보도(“윤미향 부부, 위안부 쉼터서 탈북자 월북 회유”), 2016년에 조성된 ‘김복동 장학금’을 윤미향 의원의 딸이 2012년에 수령한 것 같다는 추측성 보도(“윤미향, 자기 딸 학비 '김복동 장학금'으로 냈다”)도 있었다. 이 보도들은 크로스체크를 거치지 않았거나(미디어오늘, “조선일보의 ‘교묘한’ 윤미향 월북 회유 보도의 ‘진실’”) 억측으로 밝혀졌다(오마이뉴스, “윤미향 딸 학비가 김복동 장학금? '조선'이 외면한 실체”). 이 보도들에 대해서도 조선일보의 정정보도는 없는 상태다.

물론 언론이 매일 기사를 내는 과정에서 단 한 건의 오보도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갖춰도 오보는 나올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오보의 위험성을 감수한 무리한 보도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언론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그것을 바로잡느냐는 점이다. 오늘날 극단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도 언론의 생명이 여전히 ‘신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잘못된 사실을 내보낸 언론이 오보를 바로잡는 것은 기사를 올바르게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인 셈이다.

오보를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어떻게’에 대해서는 종종 의견이 갈린다. 어떤 방식으로 정정할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정정할 것인가. 오보가 치명적인 것은 잘못된 사실이 퍼져나가는 속도와 그것이 바로잡히는 속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첫 오보는 1면에 떠들썩하게 나지만, 그것을 정정하는 보도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흐른 뒤 눈에 띄지 않는 지면에 슬그머니 난다. 대체로 사람들이 첫 보도를 잊어버린 뒤의 일이다. 이런 사례는 현대사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비대칭 때문에 오보를 바로잡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최근 주요 언론사들이 잇따라 관련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조선일보는 6월 1일 “오직 팩트”라는 구호를 외치며 매일 2면에 1개 이상의 정정보도를 싣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오보로 현실을 중대하게 왜곡하거나 타인의 명예에 상처를 입힌 경우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한겨레신문은 저널리즘책무실을 만들어 외부 전문가들에게 감시역을 맡겼고, 5월 22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의혹’ 오보의 바로잡기(미디어스, “한겨레, '윤석열 접대 의혹' 보도 7개월 만에 사과")를 통해 정정보도의 한 전형을 세운 바 있다. KBS는 지난 4월 인터넷뉴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보도가 오보로 밝혀지거나 일부 사실관계 오류가 확인된 경우 온라인에 게재된 기사 본문에 관련 사실을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제도적 개입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언론사의 오보 정정보도 위치를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강제하자거나(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오보나 왜곡보도에 따른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정청래 의원) 주장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일견 타당한 지점도 있어 보이나, 그 주장이 주로 견제 대상인 정치권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정권의 방향성에 따라 언론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언론사의 자체 대책 마련으로 나름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고, 제도적 개입은 고려할 지점이 아직 많다. 그런데 단지 이것으로 충분할까. 독자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우리가 그간 언론의 오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를 검토해보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게재되는 정정보도에 독자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는지 말이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신뢰도를 위협할지 모를 불성실한 기사를 거침없이 내보낼 수 있는 데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진실’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를 판단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결국 정치를 진영논리에 입각한 게임으로 대하는 어떤 태도가 언론사의 ‘오보 장사’를 가능케 한다는 얘기다.

언론은 자기 진영의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뿌리고, 독자들은 기꺼이 그 기사들을 팔아준다. 오보는 그렇게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로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언론 탓만 하고 있기엔 오보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