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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다’, 봉인이 해제되자 드러난 가족 신화의 속살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6.10 10:24

[미디어스=이정희] 이제는 나보다 한참이나 키는 더 큰, 다 자란 아이가 서슴없이 '팩폭'을 날린다. 엄마 아빠만 힘들게 살아오신 줄 알지만, 그런 엄마 아빠 보면서 살았던 우리도 힘들었어요, 라고. 몇십 년 살아오며 수월했던 부부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가족' 모두의 몫이었단다. 그저 남 보기에 평범한 듯한 가정이지만, 그 가정사의 속내는 알면 알수록 요지경 속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김상식 씨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의 졸혼 요구에 산으로 떠나버렸다가 졸지에 22살이 되어버린 남편 김상식(정진영 분) 씨. 25년을 트럭 운전하며 떠도느라 가족과 멀어진, 그러나 매우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런 남편을 견뎌내며 자식 셋을 다 키우고, 이제 졸혼을 요구한 아내(원미경 분)와 세 아들딸의 이야기. 그가 젊은 김상식으로 돌아가기 전 그의 집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 나이 또래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다. 

가족, 봉인이 풀리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하지만 22살로 돌아간 남편이 은밀하게 아내에게 큰딸 은주(추자현 분)가 자신의 소생이 아닌 걸 아냐는 질문을 던진 순간, 이 평범한 듯 했던 가정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다. 

진숙이 임신 소식을 알린 자리에서 무릎 꿇고 반지를 전하던 상식 씨. 여전히 거실에 자리잡고 있는 사진 속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처럼, 당연히 진숙의 뱃속 그 아이는 상식의 아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오래된 '비밀'을 22살로 돌아간 상식 씨가 제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은밀한 목소리를 세상 걱정 없던 막내가 들었다. 

22살이 되어버린 남편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통을 내팽개치던, 자기밖에 모르던 남편이 아니었다. 말끝마다 ‘숙이씨’라며 아내와 손을 잡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남편. 하지만 아내 숙이 씨는 그 시절을 잊었다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그런 아내가 이제야 처음으로 남편의 트럭에 올랐다. 그리고 함께 찾아간 울산에서 남편을 '아버지'라 부르는 청년을 마주쳤다. 술자리에서 그 누구라도 아버지라 부른다며 얼버무린 청년의 눈은 흔들렸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되뇐다. 지금처럼 숙이씨를 연발하며 ‘아내 바보’였던 남편 상식 씨가 조금씩 변해가던 그 시절. 그래서 상식 씨만 믿고 남의 아이를 품고 그에게로 왔던 숙이 씨가 이제 남편 대신 아이들만을 껴안고 살아가느라 자신의 가슴을 치며 견뎌냈던 그 시간. 그 시간 속에 저 '아버지'라 부르는 눈빛 흔들리는 청년의 숨은 사연이 있는 것일까.

봉인이 해제된 건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저 밤 산행을 간 게 아니라 모아놓은 수면제로 자살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큰딸은 어머니를 찾아와 그 예전 어머니가 자신과 함께 죽으려고 했던 '기억'을 묻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곯은 배를 안고 죽지 않고 겨우 돌아온 집에서 아버지는 일도 나가지 않은 채 동생들의 끼니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잊을 수 없는 기억, 그래서 큰딸은 엄마가 싫었고 동생이 미웠다. 오래도록.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은 채 선명하게 낙인이 되어버린 그 기억은 동생 은희에게는 또 다른 '상흔'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뉴질랜드로 떠난 남편의 노트북에서 큰딸 은주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남편과의 '공허한 거리감'의 실체를 발견하며 또 한 가정의 파국을 예고한다.

아버지의 기억상실이 부비트랩이 되어 봉인해제된 김상식 씨 일가의 숨겨진 모습들. 그 드러나는 면면은 결국 우리 사회가 그간 신봉해오던 '가족 신화'의 속살들이다. 오랫동안 일해서 마련한 번듯한 내 집, 그리고 그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잘 자라준 아이들. 하지만 그 번듯해 보이는 한 꺼풀을 벗겨내고 보면, 그 언젠가부터 금이 가버린 부부가 있다. 아이들이라는 접착제로 견뎌왔던 시간, 하지만 그 접착제가 되었던 아이들은 저마다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봉인해제된 김상식 씨 가족이 '가족'에 대해 묻는다. 과연, 이러고도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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