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6월 4일 재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는 잊지 못할 명대사를 여럿 남겼다. 워보이들이 자폭공격을 하는 동료에게 바치는 ‘기억할게(Witness me)’, 시한부 워보이 눅스가 외치는 ‘임모탄 님이 나를 보셨어!’ 같은 대사는 예능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국이 시국이라서일까. 영어가 쥐약인 내게도 <매드맥스>에서 새롭게 들리는 대사가 한 줄 생겼다. 퓨리오사가 운전하는 전투트럭에 숨어있던 스플렌디드(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처음 하는 말이다.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인종차별 반대시위의 물결로 뒤덮은 이 한 줄과 <매드맥스>와의 접점을 읽기 위해서는 <매드맥스>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Can’t breathe. 숨쉴 수 없이 살아간다면?

핵전쟁으로 인류문명이 멸망한 22세기. 시타델의 독재자 임모탄 조(휴 키-스번)는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독식하며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전직 경찰 맥스(톰 하디)는 딸과 아내를 잃고 사막을 떠돌다가 임모탄 조의 부하 워보이들에게 납치되어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노예신세가 된다. 한편 임모탄 조 군대의 총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그의 폭정에 반대해 임모탄 조의 여자 5명을 몰래 전투트럭에 태우고 탈출을 꿈꾼다. 이때 임모탄 조의 부인들 중 리더격인 인물이 바로 스플렌디드다.

임모탄 조의 부인이 되는 조건은 까다롭다. 젊고 아름다워야 하며 결정적으로 임신능력을 갖춰야 한다. 임모탄 조 역시 아들이 둘이나 있었지만 지능이 떨어지거나 장애를 갖고 태어나 후계자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핵전쟁 후유증으로 기형이나 질병을 갖고 태어날 확률이 높은 탓이다. 그런 상황에서 독재자가 완벽한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고르고 고른 출산적령기의 완벽한 여성들. 게다가 스플렌디드는 임신까지했으니 워보이 전부는 물론 동맹군까지 요청해서 대규모의 추격전을 벌이는 건 당연했다.

그들이 숨어 있던 곳은 식량이나 연료를 수송하려 전투트럭 뒤에 연결한 트레일러. 즉 화물칸이다. 오로지 재생산을 위해 독재자의 노리개가 되어 착취를 당했으니 연료나 식량과 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장소가 임모탄의 아늑한 거처에서 화물칸로 바뀐다 한들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인 것은 매한가지였을 거다. 그녀들과 탈출계획을 수립한 건 총사령관 퓨리오사였다. 퓨리오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납치되었고 수십 번의 탈출 시도 끝에 한쪽 팔을 잃었지만 자유와 평화가 있는 녹색의 땅에 대한 희망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이후 평론가 듀나의 감상평인 ‘모래와 불과 금속의 발레’라는 표현처럼 사막과 모래폭풍을 오가며 건조하지만 화끈하고, 텁텁하지만 날카로운 잊지 못할 카체이싱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평범한 재난영화에서 짐짝으로만 연출되고마는 여성캐릭터들과 달리 임모탄의 다섯 부인은 각자 1인분의 몫을 해낸다.

스플렌디드는 임신한 몸으로 과감하게 총알방패를 자처해 임모탄 조의 공격을 원천봉쇄하고 케이퍼블은 세뇌된 삶을 살아온 눅스에게 진실된 미래를 제시하며 갱생을 돕는다. 더그는 적의 출연을 가장 먼저 알리고 힘들게 얻은 종자를 운반하며 토스트는 무기를 정비하고 스스로 미끼가 된다. ‘보석처럼 아껴주는데 왜 도망쳐야 하냐’던 철없는 치도까지 후반부에서는 문자 그대로 결정적 연결고리로서 제몫을 다 한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수록곡인 ‘Brother in arms(전우)’를 이들에게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Don’t breathes.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간다면?

영화에서 ‘Breathe’는 한 번 더 등장한다. 시점은 녹색의 땅에 도달하기 직전, 마지막 추격조를 뿌리칠 때다. 전투트럭은 늪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데, 늪에도 끄떡없는 무한궤도차량을 탄 무기상인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쫓아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은 총알은 단 한 발. 맥스는 마지막 남은 총알과 저격총을 퓨리오사에게 넘긴다. 맥스에 어깨에 총을 거치한 퓨리오사는 말한다. ‘숨도 쉬지마(Don’t breathe)’. 그렇게 총알은 무기상인을 적중시키고 맥스는 연료와 대검을 들고가 뒷처리를 한다.

그렇게 ‘숨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은 퓨리오사가 기억하는 녹색의 땅이 아니었다. 강은 오염되고 초원은 메말랐다. 살아남은 부발리니 부족도 주름진 할머니 예닐곱 명뿐. 쏟아지는 총알과 퍼붓는 폭탄 속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던 퓨리오사는 사막 한가운데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어디로 가야할까. 부발리니 부족도 확신할 수 없는, 진짜 녹색의 땅이 있을지도 모를 소금사막을 건너려면 전투트럭에 있는 연료를 모두 오토바이를 옮기고 꼬박 160일을 달려야 한다.

평범한 탈출극에서 위대한 이야기로 <매드맥스>의 진화는 이제 시작이다.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맥스는 제안한다. 시타델로 돌아가자고. 3일만 달리면 텅 비어있는 시타델을 정복할 수 있다고. 총사령관 퓨리오사는 전우의 제안을 수락한다. 한 차례 추격전으로 너덜너덜해진 전투트럭. 스플렌디드를 잃고 의욕을 상실한 임모탄의 부인들. 총 몇자루가 전부인 부발리니 부족을 이끌고 퓨리오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결국 시타델로 복귀한 퓨리오사와 동료들은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임모탄의 거처로 올라가는 크레인에 탑승한다. 퓨리오사는 몰래 떠나는 맥스를 발견하고, 맥스는 그녀에게 흐릿한 미소를 보내고 화면이 암전되는데 감독이 문제 한 가지를 낸다.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pur better selves?'

The First History Man

희망 없는 시대를 떠돌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어떤 이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다

<매드맥스>에서 숨쉴 수 없는 사람들(Can’t breathe)이 숨도 쉬지 않고(Don’t breathe) 달려간 곳은 결국 황무지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이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사막을 건너면 녹색의 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등 떠미는 게 정답일까. 폭정을 펼친 독재자와 암묵적인 침묵으로 사태를 방관한 주민들과 이제라도 아름답게 화해하라며 부추기는 게 정답일까. 그도 아니면 지금껏 살아왔던 곳으로 돌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것인가.

시타델의 모든 사람들(All)은 독재자의 폭정 아래 고통 받고 있었지만 어떤 이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면(Someone lives matter) 모두의 문제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질 리 없다(All lives matter). 다시 문제를 읽어본다. 희망 없는 시대를 떠돌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통해 2시간 동안 친절하고 꼼꼼한 문제풀이 과정을 따라왔다면 모범답안을 떠올리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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