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MBC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이 차디찬 무관심 속에 끝났다. 오디션 열풍이 불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냉대 받은 오디션은 없었다. 케이블TV의 프로그램도 아니고, 무려 MBC가 무려 일요일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편성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대도 철저히 실패한 것이다.

물론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지긴 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피로감이 몰려오며 옥석이 가려질 시점이긴 했지만, <신입사원>의 참패는 이례적이다. <신입사원>은 <나는 가수다>에 이어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최근 <나는 가수다>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었다. 그렇다면 바로 뒤에 방송된 <신입사원>도 그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철저히 외면당했다. 시청자는 <신입사원>이 시작되기 전에 칼처럼 채널을 돌렸다.

일반적인 수준의 오디션 피로증이 아니라,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이 정말 보기 싫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그토록 보기 싫어했을까? 그 이유를 알면 역으로, 요즘 사람들이 오디션에서 보길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평균이상의 실패스토리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몰렸다. 가수 지망생의 경우는 외모나 학력, 패션 감각, 말솜씨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도 노래실력 하나만으로 지원한 사례가 많았다. 실제로 그 중에서 허각과 장재인, 백청강, 이태권 등 '루저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탄생했다.

반면에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외모, 학력, 패션 감각, 말솜씨 등이 모두 우월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운서라는 직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 시청자가 보기엔 평균이상 엘리트가 모인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렸다.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은 '우리들의 이야기'였지만 <신입사원>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예능조차도 평균이하들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시대다. <무한도전>에도 평균이하의 형제들, <1박2일>에도 평균이하의 형제들이 등장한다. 잘난 스타들이 너무 억지로 못난이처럼 굴어서 때로는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까지, 이 프로그램들은 평균이하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신입사원>은 아나운서 오디션의 속성상 그 반대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더 큰 문제는 서바이벌 오디션이기 때문에 반드시 절대다수가 떨어진다는 데서 터졌다. 잘난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명 한 명씩 떨어지는 모습이 매주 연출됐던 것이다. '살려주세요'라며 눈물 흘린 사람까지 있었지만, 서바이벌 형식은 냉혹했다.

시청자 입장에선 '저렇게 잘난 사람들까지 잘려나가는 세상인데 나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평균이하의 캐릭터가 한 단계 한 단계 상승하는 스토리를 보여줬었다. 반면에 <신입사원>에선 평균이상의 캐릭터들이 차례대로 실패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실패스토리가 아닌 성공스토리였다. 그것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은 루저들의 성공스토리.


과도한 리얼리티

<신입사원>에선 중반까지, 도전자 한 명을 앞에 놓고 여러 심사위원이 돌아가면서 독설을 퍼붓는 장면이 연출됐었다. 도전자들은 부들부들 떨며 긴장했다. 이것은 냉혹한 사회에 직면한 청년 구직자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초 리얼리티였던 것이다.

시청자는 이런 식의 적나라한 리얼리티를 원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오디션에 원하는 건 판타지다. '열심히만 하면 나도 꿈을 이룰 수 있어!'라는 희망의 판타지. <신입사원>은 희망의 판타지가 아닌 절망과 비탄의 리얼리티를 줬다.

1위에게 주어진 것도 판타지스럽지 않았다. 여태까지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에겐 억대의 돈과 연예인 스타라는 환상이 상품으로 주어졌었다. 물론 오디션 우승을 통해 연예인 스타가 된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지만,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당시에 시청자는 그 환상을 실제라고 믿었다.

반면에 <신입사원> 1위가 받은 것은 MBC 입사증인데, 그나마 인턴사원이었다. 정말 판타지스럽지 않다. 과거에 로또복권 당첨금이 100억 이상 200억 원까지 된다고 했을 때 우리사회엔 복권광풍이 불었었다. 그 후 상금 액수가 줄어들자 광풍은 금방 꺼졌다. 이렇게 사람들은 승자의 과실이 어마어마할 때 열광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디션에도 그 원칙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신입사원>의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다.


쇼 대신에 머리를 켜라?

지금까지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모두 노래와 춤, 즉 쇼를 보여줬다는 데 있다. 기성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도 쇼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반면에 <신입사원>엔 쇼가 없었다. 당연하다. 아나운서는 쇼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나운서는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입사원>엔 말이 나왔다. 논리적인 말과 말의 대결이었는데, 쇼와 말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쇼의 경우는 보고 즐기는 종류의 것이다. 반면에 말은 듣고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즉 쇼는 감성이고 말은 이성이다. 쇼를 보는 동안 사람은 수동적인 상태가 되는 반면, 논리적인 말의 대결을 따라가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조금은 더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감성과 수동성을 택했다. TV를 보는 동안만큼은 이성을 꺼두길 원했던 것이다.

시청률 10%를 넘은 <댄싱 위드 더 스타>도 화려한 쇼를 보여준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쇼가 생각보다 맥 빠지자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쇼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잠시 10%를 돌파했다. 말로 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기적의 오디션>은 아직 한 자릿수 시청률이다. 톱밴드는 쇼를 보여주기는 하는데, 락밴드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시청률이 한 자릿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시청자는 오디션을 통해 평균이하가 성공하는 희망의 판타지 스토리에서 감동과 위안을 받고, 흥겨운 쇼를 통해 긴장을 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강렬한 자극성도 오디션 인기의 한 요인인데, 독설과 탈락 경쟁으로 자극을 준 <신입사원>이 실패한 것을 보면 자극성은 오디션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는, 이성과 현실감각을 깨우는 음울한 리얼리티가 프로그램 성공에는 독이라는 얘기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꿈'이니까.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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