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스럽다. 원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경직한 원칙과 유연한 원칙으로 개념을 구분하고 시민사회도 이제 유연한 원칙, 실용적 원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한 명의 운동가로서 유연한 원칙을 장착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운동단체로서 갖는 유연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서 그 원칙의 적용이 들쭉날쭉할 때가 많았다.

한 개인이나 한 단체의 유연성 문제가 중심이 아니라 세력 간 힘의 관계가 개인이나 단체의 원칙을 유연하게 강제했거나 경직하게 고립시켰던 것이 대부분이다.

▲ 경향신문 3월3일자 24면.
시청자 중심 국민 중심이라는 운동의 축을 두고 시민운동가들은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주장을 펼쳐왔다. 때때로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그 방법론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고, 갈등하며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왔다. 하지만 결국 동의하지 못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을 향해서 ‘원칙을 팔아먹었다, 원칙이 아니라 이중잣대이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최소한 원칙에서 일정하게 일탈했다고 보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 정리과정에서 핵심적인 결정요인은 결국 힘 있는 자 힘 있는 단체가 어떤 입장으로 최종 정리하느냐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소극적 동의를 하는 측면도 있었고, 적극적 주체가 되는 측면도 있었다.

소극적 동의의 경우, 사실 특정 사안에 대해서 운동 자체를 포기하거나 유보하고, 적극적 주체들만 나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 집중적인 운동을 펼친 것이 적어도 지금까지 언론시민운동의 운동방식이었다.

하지만 언론시민운동의 건강성은 특정사안에 의한 분열자체가 장기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사안에서 이견이 제출되었을 때 감정적으로 이성적으로 불쾌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상호 인정해 왔다. 그리고 또 다른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김없이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이견이었지만 다른 사안에서는 상호 동의할 때 다시 연대의 틀을 복원하고 그 힘을 발판삼아 대정부 대국회 싸움을 힘있게 진행해 온 전통이 있고, 이것이 지금 언론시민운동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통합민주당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거명되고 있는 사람 중 최민희 전 민언련 대표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해서 방송위원이 된 사람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냐며 우리는 비판을 하기도 했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일부 언론들의 공격에 방어벽을 펼치며 우리는 보호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최 전 대표의 방송위원으로서 직무수행에 장단점이 한꺼번에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몇 몇 관련 댓글에서도 지적되듯이, 무소속 행정기구로서의 방송위원회 구조를 포기한 방송위원들의 결정에 대해서 최 전 대표도 ‘책임’을 면할 순 없다.

▲ 한겨레 3월3일자 4면.
문제는 현재 방송통신위원으로 거론되는 모든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최 전 대표만큼 언론시민단체의 입장을 많이 동의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거론 인사와 민주당 거론 인사는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최근 미디어스 기사를 보면 적어도 민주당 거론 인사는 현재까지 3명으로 압축되었다고 한다.

이 중 2명을 선정하는 민주당의 마지막 리스트까지 올라 간 인사 중 신문방송교차소유 금지에 동의하고, 공영방송 KBS2와 MBC 민영화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무료보편적 방송서비스의 획기적 강화를 위한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며, 시민들의 미디어 접근을 강화하는데 동의하는 등 지난 해 10월에 발표된 대선미디어연대의 14대 미디어정책과제에 대해서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으로 최 전대표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최 전대표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적이 시민운동의 과정이나 방송위원으로서 직무 수행과정에서 여러차례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통합민주당이라는 현실 정치세력에 의해서 추천될 수 있는 사람, 그것도 3순위권에 진입해 있는 사람이 최 전 대표 밖에 없다면 우리는 전 대표가 방통위원으로 가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감정의 찌꺼기도 시청자 중심 국민 중심의 확고한 원칙 속에 녹여야 한다.

대선미디어연대가 발표한 14대 미디어개혁과제를 동의하는 최 전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한나라당이든 통합민주당이든 그들이 추천하려는 현실 가능한 선상에 올라 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운동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 미디어운동진영 내에 여러 사람들이 있고, 능력 있고 결 고운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비중과 그 막중한 역할을 따져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고 추천하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인선작업이 아니라 정실인사 밀실인사를 통해서 특정인들을 밀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원망스럽지만, 이것이 미디어운동의 과제라면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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