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당선인에서 의원으로 호칭을 바꿔야겠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간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 기자회견을 했지만 반응은 좋지 않다. 그간 내놨던 해명의 반복이고 불충분하다는 게 대다수 언론의 평가이다.

그러나 문제를 나눠서 각각의 경우를 잘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다. 윤미향 의원이 2012년 3월 자신의 딸을 ‘김복동 할머니 장학생’으로 지칭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나비기금 조성금으로 기탁했다는 소식을 전한 글은 조선일보에 의해 뒤늦게 발굴(?)돼 횡령 의혹의 근거로 쓰였다. 몇몇 언론이 조선일보의 보도를 따라 썼다.

‘김복동 장학금’은 2016년 마련됐고 2019년부터 지급되었으므로 2012년 글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윤미향 의원이 ‘김복동 장학생’이란 표현은 당시 김복동 할머니가 윤미향 의원의 딸에게 용돈을 준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하자 조선일보는 “공식 장학금이 아닌, ‘비공식 장학금’이 2012년 윤 의원 딸의 학비로 쓰였다는 의미”라고 썼다. 어느 언론은 윤미향 의원이 기자회견 이전에는 침묵하다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며 ‘태세전환’이라고 썼다. 앞뒤야 어떻든 ‘때리기’만 하면 된다는 언론의 전형적 태도로 볼 수 있다.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개인계좌를 이용해 후원금을 모금한 것은 물론 문제다. 하지만 개인계좌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횡령과 연결지을 수는 없다. 계좌도 계좌 나름이다. 법적인 문제는 잠시 떠나 상식의 차원에서, 개인계좌가 문제가 될만한 일을 세 가지 경우로 나눠보자.

첫째, 비록 명의는 개인이더라도 계좌가 특정 사업을 위해 개설됐고 모든 입출금 내역이 이 사업과 관계돼 있다면 소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론 윤미향 의원은 9개 사업에 4개 계좌를 활용했다고 해명했으므로 이 경우는 아닐 것이다. 둘째, 사업별로 계좌가 나눠져 있진 않았으나 적어도 개인 명의 계좌들의 입출금 내역이 모두 공적인 목적과 관계가 있는 경우이다. 해명을 위한 자료 정리가 다소 복잡해지기는 하겠으나 이 역시 소명을 못할 것은 아니다.

셋째는 해당 계좌들의 명의가 무엇이든 공사가 구분되지 않고 입출금이 이뤄졌을 경우다. 이 경우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계좌에 ‘내 돈’은 1백만원, ‘공금’은 1천만원 있는데, 그 상태에서 사적인 지출 용도로 5백만원을 인출하였다면 나중에 그 돈을 메꿔놓았더라도 횡령으로 봐야 한다. 윤미향 의원은 계좌이체 내역에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며 스스로 부끄럽다고 했고, 동시에 자금 유용은 없다고 했는데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일이 됐다.

안성 쉼터와 관련된 의혹도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윤미향 의원의 주장은 공사비만 7억7천만원이 들어간 집을 7억5천만원에 샀고, 이후 여러 그럴만한 이유 때문에 4억 2천만원에 매도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사비가 7억7천만원이라는 근거는 없고 매입 가격의 절반 수준에 매도한 이유가 감가상각, 주변 부동산 가격 변화 등이라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안성 쉼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판 것이 사실이라면 이유는 세 가지일 것이다. 윤미향 의원과 당시 정대협이 ‘바가지’를 썼거나, 비자금을 조성했거나, 매도인에게 이익을 안겨 또다른 이익을 도모했거나. 첫 번째 경우에 대해선 정의연이 사과했고 두 번째, 세 번째 경우의 근거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이미 거의 모든 언론은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쓰고 있다.

문제를 경우별로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다른 시민단체 등이 도매금으로 취급될 수 있어서다. 어느 단체가 개인계좌로 후원금 등을 모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돈을 자기들끼리 나눠가졌다는 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김복동 장학생’을 해석하는 언론의 시각을 보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명약관화해 보인다.

윤미향 의원이 일전에 페이스북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한 것은 뭔가 그 정도로 억울하다는 뜻일 게다. 덕분에 보수언론은 윤미향 의원을 ‘제2의 조국’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여당 지지층의 분위기가 ‘조국 대전’때 같지는 않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부정적인 응답이 훨씬 많다.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물론 정파적 판단의 결과일 수도 있다. 가령 안성 쉼터 거래 중간에 끼어있는 이규민 의원은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 미워하는 ‘이재명계’라고 소문이 났다. 이 때문에 윤미향 의원이 손해를 보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감정 이입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가령 조국 전 장관의 사례에서 ‘촛불 시민’들이 본 것은 대의를 내세우는 사람의 ‘솔직한 내면’이다. 좋은 말씀 설파하시는 분들도 다들 자기 재산 불리고 자식 키우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다. 여기서 ‘촛불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 조국 전 장관이 압수수색을 당한 일이 ‘인권침해’가 되고, ‘촛불 시민’들이 “나도 언젠가 검찰에 의한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는 데서 이런 감각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윤미향 의원의 사례에서 ‘촛불 시민’들이 본 것은 대의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기꾼’의 모습이다. 여기서 이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대상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다. 조국 전 장관의 ‘생존을 위한 삶’과 ‘사기를 당하는 나’는, 재산을 지키고 학벌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사회정의를 위해 시민단체에 후원금 정도는 낼 수 있는 ‘양심적 중산층’이라는 특정한 형태로 수렴한다.

윤미향 의원이라는 ‘사기꾼’은 ‘양심적 중산층’들의 세계에선 불가해한 ‘외부’인 것인데, 이것이 윤미향이 조국이 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게 이른바 ‘진보’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예고된 미래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관일까?

시민사회운동이 장기간에 걸쳐 소위 민주세력과 정파적 관계를 맺고 정치적 이득을 나눠온 것은 이 현실을 외면한 것이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민주세력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동안 시민사회운동의 토대는 질적으로 허약해져왔다. 이번 사태를 두고 각자가 여러 형태로 다양한 평가를 하고 있으나, 이것이 윤미향 의원이 급조된 비례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된 이유이고, 그게 이번 사태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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