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뉴스타파의 '한만호 비망록' 보도로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논란인 가운데, KBS가 과거 2011년 한만호 씨 인터뷰 영상을 21일 최초 공개했다. 한만호 씨 육성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으로 보도 내용은 '한만호 비망록' 내용과 유사하다. 한 전 총리 사건은 검찰과 자신이 함께 만든 시나리오라는 주장이다.

KBS는 한 전 총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1년 당시 육성 인터뷰를 보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10~2011년에 걸친 공판 과정에서 한 씨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고, 관련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인터뷰 내용이 새롭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점검결과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KBS 통합뉴스룸은 당시에 이 인터뷰를 보도했어야 한다고 판단한다"며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의 당사자가 한 최초의 육성 인터뷰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고 정치인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이 대개 그렇지만, 한 전 총리 사건도 한 씨와 관련자 증언이 법정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KBS '뉴스9' 5월 21일 <“한명숙 9억 수수는 검찰과 제가 만든 시나리오”…한만호 육성 공개> 방송화면

KBS 보도에 따르면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1년 6월 13일, 자택에서 KBS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 관련 진술 압박이 자신의 회사 감사인 남 모 씨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만호 씨는 "(남 씨가)아주 윗선에서 계획적으로, 아주 윗선이다. 협조해서 도움받으시고 아주 윗선에서 계획된, 계획적으로 진행된 수사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한만호 씨는 "저는 검찰에서 9억원의 자금을 세 번에 걸쳐서 이렇게 조성을 했다라고만 진술을 했고, 그후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는 검찰과 저희가 만든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한만호 씨는 애초 불법 정치자금 규모도 9억원이 아니라 5억원이었고, 돈을 건넨 장소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검찰의 진술이 조작됐다는 한만호 씨 주장은 1심 재판에서 받아들여졌지만 항소심에서는 기각됐다. 한만호 씨는 위증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한만호 씨는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가 될까봐 두려웠고, 수사에 협조하면 조기 석방도 도와주겠다는 검찰 측 회유가 있어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만호 씨는 "'진술만 잘 되면 곧바로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가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다른 건으로 고소가 돼도 기소 안 되도록 해주겠다'. 검찰이 할 수 있는 무조건 다 해주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KBS는 이날 보도 직전 취재파일을 통해 2011년 비보도 경위와 9년만의 인터뷰 공개 경위를 좀 더 상세히 밝혔다. KBS는 "당시 KBS는 이 인터뷰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한 씨가 위증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어, 자칫 피의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처럼 비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또 한 씨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미 법정에서 나온 얘기라는 점도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KBS는 "9년 전에 방송하지 않은 인터뷰를 지금 기사화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에 대해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제기됐다"면서도 인터뷰를 뒤늦게라도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KBS는 "한 씨의 비망록 내용이 자세히 언론에 보도되며 당시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연 적절했는지 여부가 뜨거운 사회적 논쟁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라며 "특히 KBS는 한 씨의 말 가운데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한 주장보다 '검찰 수사가 여러 측면에서 부적절했다'는 주장에 주목했다. 이미 내려진 사법적 판단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당시 수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돌아보는데 더 무게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

한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한만호 씨 진술에 대한 신빙성 여부였다. 한만호 씨는 2010년 검찰 조사에서 한 전 총리에게 9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한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한만호 씨가 1심 재판 중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1심 재판부는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등의 근거를 들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한만호 씨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심리에서도 한만호 씨 진술 신빙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한 씨가 번복한 법정에서의 진술만으로 검찰 진술의 신빙성이 부정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한 전 총리가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한만호 비망록'은 사건 관련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돼 신빙성이 낮다는 판단을 받았다.

다만 9억원 중 한 전 총리측에 건너간 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6억원과 관련해 13명의 대법관 전원 중 5명은 일부 무죄취지로 반대의견을 냈다. 6억원과 관련해서는 한만호 씨 검찰진술 외에 이를 뒷받침할만한 객관적 물증이 없다는 점, 한만호 씨가 위증죄의 부담을 지면서까지 한 법정진술 등이 반대의견의 이유로 제시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 두드러졌다.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에서 "이 사건은 한만호가 허위나 과장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이를 기화로 검사가 한만호의 진실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라며 "그럼에도 진술을 바꾸었음에 비춰보면 그의 검찰 진술이 과연 진실에 부합하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또 "검찰에 대한 수사 협조의 대가로 회사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한 전 총리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여부나 규모와 관련해 허위나 과장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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